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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이야기 사라진 지 5년… MBC 살릴 마지막 기회”
‘우리는 왜 파업을 하는가’ MBC 재직 동문을 만나다
2017년 09월 25일 (월) 유현빈 기자 heybini@ewhain.net
   
 
  ▲ MBC 박선하 기자.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타사 특종에는 ‘부럽다’는 말만

‘MBC만 쓸 수 있는 기사’ 쓰고파

옳은 일이니 불이익 걱정 안 해

 

  25일 기준 약 2000명이 참여한 문화방송(MBC) 총파업은 3주가 넘게 계속되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음악 소리만 흘러나오고, 각종 드라마와 예능 방송은 결방됐다.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여러 뉴스 프로그램들은 방송 시간이 단축되거나 다른 프로그램들로 교체됐다.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본업을 놓아야만 했을까. 본교 출신으로 MBC에 재직 중인 박선하(약학・04년졸) 기자, 오해정(언론・05년졸) 기자, 허항(사회・03년졸) PD를 만나 그들이 파업해야만 했던 이유를 들어봤다.

 

- 언론인이 되고자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박선하 기자(박):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방송반 아나운서를 맡았다. 초등학교 때는 교내 사건들을 취재하기도 했다.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사건의 현장에서 직접 취재해 내가 먼저 알게 된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재미를 느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 내가 속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오해정 기자(오): 어렸을 때부터 불만과 호기심이 많았고,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 전달할 때 희열을 느꼈다. 나의 성격과 소질을 활용해 생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직업을 고민해보니 기자가 잘 맞을 것 같았다.  

허항 PD(허): MBC 뉴스를 보며 자라온 나는 기자를 꿈꿨다. 그런데 대학 시절 학보사 활동을 하며 내가 기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렇지만 언론 분야의 꿈을 놓지는 못했다. 우연히 계약직 예능 PD 시험을 보게 돼 직접 일해보니 적성에 잘 맞았다. 가수를 만나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 것이 좋아 공채를 준비해 입사했다.

 

   
 
  ▲ MBC 오해정 기자.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 언론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입사한 MBC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

박: 개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듯한 기사를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언론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입장을 대변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MBC 뉴스에서 성소수자나 가난한 사람처럼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친정부·친재벌적 뉴스가 들어섰다. 쓰고자 하는 기사를 쓰지 못하고 회사 상부에서 하달되는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 현장과 진정한 사건의 내막은 직접 취재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본부장이나 사장이 기사를 직접 검열하고 감시한다. 부장들이 기사를 고쳐버리기 때문에 문제점을 논하는 대화마저도 단절됐다.

보도국의 구조적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더욱 부각됐다. 과거에는 타사가 최초 보도를 하면 ‘이번에는 한발 늦었으니 다음 두 번의 최초 보도는 우리가 낼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에 회사 내부에서는 타사들의 최초 보도를 보며 ‘저 방송국은 저런 걸 다 하네, 부럽고 대단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집중 취재할 목적으로 구상된 특별 대응팀도 사건이 발생한 1주일 후에나 꾸려졌고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해체됐다. 그렇게 큰 이슈는 사건이 터지면 바로 현장에 가야 하는데 이미 모든 언론사가 현장을 훑은 뒤에야 그곳에 도착했다. 현장에 간 기자가 ‘잡초마저 남지 않은 곳’이라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수뇌부는 이 상황을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다. 기자들은 아픔도 감각도 없이 점점 무뎌졌다.

오: MBC는 공영방송이다. 국민이 주인인 전파를 사용하는 만큼 힘들고 돈 없는 서민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다. 그런 사람들에게 뉴스를 가공해 전달하는 것이 내 일이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 부끄럽게도 지난 5년간 그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2010년에 강남의 학교들이 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는 특종을 보도해 감사까지 이어지도록 한 것이 내 마지막 특종이었다.

기자들이 자율적 분위기에서 취재의 칼날을 연마할 수 있어야 예리한 특종을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간 계속해서 게이트 키핑을 맡은 데스크의 압박이 존재했다. 뜻대로 글을 쓰면 징계를 받거나 해고됐으며 무단 전보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발제하거나 취재할 때 자기 자신을 검열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렇게 취재의 욕구가 거세된 상태에서 5년이 흘렀다. 현재 MBC는 참신한 기사가 나오기조차 힘든 구조가 됐다. 말이 ‘파업’이지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동안 언론인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매일 반성하고 있다.

허: 기자들이 황무지에서 진실을 찾아내 일보를 터뜨리는 것이 일이라면, PD는 이미 이슈화된 것을 취해 드라마나 예능으로 다루는 작업을 한다. 나는 시청자의 반응을 많이 모니터링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니 힐링된다’거나 ‘이 프로그램 보는 게 일상의 유일한 낙’이라 할 때 뿌듯하다. 예능PD에게 제1의 덕목은 시청자에게 낙과 재미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명하달식 업무처리가 예능국에도 존재했다. 체제가 무너지니 예능 프로그램의 질을 좌우하는 캐스팅 과정에 부장이나 국장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 포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윗사람의 힘이 너무 커지고 부당한 일들이 생기면서 파업을 결정하게 됐다. 순수하게 PD를 꿈꿔 여기까지 왔는데 어느 순간 대의보다는 부장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딜레마였다. 최근에는 그런 일이 더욱 빈번했다.

 

- 파업에 임하는 심정을 듣고 싶다

박: 이 싸움의 승패에 상관없이 나는 내 행동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 이후 ‘파업 때문에 불이익을 얻으면 어떡하나’하는 불안한 마음은 없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허: 예능 프로그램에는 복잡한 계약들이 묶여있는데, 큰 금액의 위약금 같은 부분을 포기하고도 일단 MBC부터 살리자는 생각이 예능 PD들 사이에 만연하다. 최근 MBC 예능은 내용과 시청률 면에서 재건되고 있었다. 그것을 체감하는데도 모든 프로그램들을 다 내려놓겠다는 결정은 사실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멈추고 확실하게 참여해야 나중에 떳떳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오히려 현재 예능국은 ‘힘을 실을 수 있는 데까지 보탰으니 방송국을 살리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분위기다.

 

   
 
  ▲ MBC 허항 PD.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 MBC가 회복되면 어떤 뉴스를 하길 바라는가

박: “MBC가 돌아왔구나, 다시 MBC만 할 수 있는 기사를 쓰게 됐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떠한 목적 없이 진실을 추구하며 본질을 왜곡시키지 않은 채 공정한 시선으로 전달하고 싶다. 13년 동안 기자가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졌는지를 배웠다. 어느 편에 서야 하나 고민할 때 칼보다도 무서운 힘을 가진 기자가 약자를 대변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 회사 일층 로비에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젊고 품격 있는 방송”이라는 회사의 슬로건이 게시돼 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보도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매체가 많아졌지만 국민의 방송이라는 점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만큼 견제와 감시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언제나 진실에 근거한 보도를 하고, 같은 사안에 대한 것이라면 약자의 편에 서는 뉴스를 하고 싶다.

허: 뉴스가 되살아나는 것이 이번 파업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뉴스가 살아나면 방송국도, 예능 프로그램들도 덕을 보게 된다. 과거 기자 본인의 자존심과 자율성을 중시했던 MBC 뉴스의 구조를 따른 타 방송국은 최근 부상하며 사랑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방송국의 이미지 자체가 좋아졌다. 결국 모든 방송사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뉴스’라는 것이다. 훌륭한 기자들이 그런 곳에서 다시 일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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