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나는 종종 낯선 지역의 골목에서 그 지역의 민낯과 만난다. 동네 안을 통하는 좁은 길은 동네 사람들의 일상으로 가득 차 있어, 많은 말이 오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꼭 쥔 동네 꼬마들이 들락거릴 구멍가게부터 서점까지, 사람 사는 동네에 필요한 온갖 것들로 채워진 작은 공간은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 온 타인이 그 동네의 일상을 관음하기에 완벽하다. 이번 방학, 나는 유럽의 골목길을 관음했다. 25살 전까지 자유여행을 금지당해 이미 포기했던 소원이었지만, 우연히 떠난 유럽단체여행의 자유시간에서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동유럽에서 마주친 다양한 골목길은 그들의 삶에 끼어든 낯선 이방인을 반기며 나와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유럽에 가기 전 내 일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차 있었지만 거기에 나는 없었다. 그리고 오직 해야 할 일과 타인으로만 채워진 일상에 끌려 다니며 생긴 피로감은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됐다. 유럽여행은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막다른 길에 당도해버린 몸과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숨 가쁨이 무색해질 만큼 유럽은 여유가 넘쳤고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마저 낯선 이곳에서 익숙한 건 나뿐이었다. 자연스럽게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의 단점으로 인정하고 그동안의 내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니 비로소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온갖 책에서 또는 강연에서 지겹도록 들어왔던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여행을 통해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과 만날 수 있는 여행은 분명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일상 속에서는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며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들을 여행은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특히나 나처럼 자신에게 지친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유하고 싶다. 일상에서의 ‘나’를 벗어나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나’로 살아본다면 늘 똑같이 굴러가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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