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얘가 무슨 결혼하려고 대학 간 줄 알아? 너 하고 싶은 것들 다 하고 결혼은 네가 하고 싶으면 그때 해.”

  내가 엄마의 딸이라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이 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다 아빠께서 대학 졸업 후 나의 계획을 물었다. 휴학도 하고 싶고, 세계 곳곳을 여행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조심스럽게 “그래도 바로 교사 준비하고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사는게 낫지 않겠어?”라고 권유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길 바라며 한 말임을 알았기에 화를 내진 못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화가 난 사람은 다름아닌 엄마였다. “승희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고 네 삶 다 누리고 살아. 결혼은 나중에 진짜 좋은 사람 만났을 때 해도 늦지 않아.”

  넉넉하지 않던 집안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아빠를 만나 집안일을 하며 직장을 그만 둔 우리 엄마는 한국사회에서 참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엄마의 꿈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나와 내 동생들이 엄마의 행복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큰 굴곡이 없던 엄마의 삶에 별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그제서야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최근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사회에 화가 난 사람부터 암울한 현실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참 다양한 반응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을 관통한 감정은 아마 ‘공감’이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게 되는 차별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아직도 25세 이상의 여자는 크리스마스 후의 케이크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한다는 무의식 속에서 워킹맘이란 단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페미니즘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더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를 가장 아끼는 아빠마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자를 출산과 집안일만을 위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꿈을 알기까지 무려 21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는 이화에 왔기 때문에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화가 없었다면 내가 진정한 ‘사람’이 되는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이화가 내게 준 가장 값진 가르침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확신이다. 나는 ‘약한 여성’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교수님부터 친구까지 함께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더 든든하다. 이화의 가르침처럼, 우리 엄마의 마음처럼 절대로 세상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 것이다. 나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아직 세상에 주어진 과제는 많지만 오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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