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스물한 살 무렵에는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가만히 있어도 울리는 핸드폰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이 아무리 의미 없는 약속, 무료한 술자리라고 해도 누군가 그들의 존재를 바란다는 사실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견 아쉽고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떠나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눈으로 쫓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버려지는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갓 성인이 된 지인들이 혼자인 것이 무섭다고, 싫다고 할 때 '혼자도 괜찮다는 걸 배우라'거나 '혼자가 더 좋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 때는 모두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곤 하니까. 그리고 나 역시도 '혼자 있음'을 그리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스스로를 위한 자리와 필요를 마련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남겨진 시간을 초조해하지 않거나 타인의 시선을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빛나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위한 식탁을 준비하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자기 안의 미처 다 자라지 않은 아이를 위한 소풍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눈을 충분히 넓게 뜨지 않아 그렇지 SNS에 존재감을 토해내는 사람들의 수만큼 그들도 많았다. 나의 유일한 동행은 나뿐이라는 조용한 아우라를 뿜는 사람들이.

  저 스스로를 위한 필요를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누군가가 공격적으로 물어오면 고요하게 웃어 경건해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한 순간들이 못 견디게 좋다.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내가 쓸모 있어지는 것이 행복하다. 자기 효능감과 행복을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늘 고민하지만.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고독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왔지 않은가. 가끔은 혼자 있는 일이 그저 흩어지기보다는 입자 굵은 커피 알갱이처럼 내 안에 쌓인다. 그 시간들은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내가 되는지를 가르쳐준다. 때로 가치 있는 고독은 무의미와 의미를 걸러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함께 있음'을 더 귀하게 느끼도록 한다. 고독이란 관계의 혜안을 가지기 위해 시신경과 혈관이 자라도록 하는 시간일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조종 든다.

  스물넷의 나는 여전히 어디엔가 필요한 사람인 한편, 빈 시간을 혼자 채우기 위해 표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순간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의 있음을 내가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어떤 시간과 공간에 속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이건 아니건, 내가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애타게 찾을 것. 이것이 제1가치인 사람들은 빛이 나기 마련이다. 모든 빛나는, 빛날 사람들의 첫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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