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포 대학교(DePauw University)는 미국 인디애나주 시골 마을 그린캐슬(Greencastle)에 위치한 학교다. 학교가 작아 전교생이 약 2000명뿐이다. 인디애나주 자체가 유명한 주가 아니다보니 인디애나 중에서도 시골 마을인 그린캐슬은 정말 할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남들처럼 교환학생 생활동안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쇼핑을 갈 수도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과 매일 살 비비고 지낸 5개월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처음 드포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일부러 한국인이 없는 시골 학교를 골랐지만 막상 가려니 의지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또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처음이라 그것도 걱정이 됐다. 두려움만 가득 안고 도착한 곳은 정말 미국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안녕. 나는 숙영이야. 한국에서 왔어’라고 말하기만 했을 뿐인데 국제학생 사이에서 제일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학교는 학생들과 달랐다. 드포에는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많았음에도 한국어 수업은 없었고 한국 관련 동아리 조차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대표가 된 것 같았고 평소에 없던 애국심까지 생겨났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드포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와 둘이 한국인 교수님의 조언을 받으며 한국어 튜터링 시간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그 소식을 들은 아시아 학부에서 지원금을 약 500달러를 줬고 정기적으로 일정 수의 학생이 참여하면 한국어 수업을 개설해 준다는 제안까지 했다. 기세를 몰아 시카고에 위치한 한국영사관에서 학교에 찾아와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열었고 그 곳의 언어교육원의 자료를 줘 더 체계적인 한국어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학기 말에는 한 학기동안 얼마나 그 언어를 잘 배웠는지 랭귀지 콘테스트(Language Contest)가 열리는데 한국어 튜터링 소식을 들은 언어 학부에서 처음으로 한국어도 대회 항목에 추가해줬다. 심지어 정규 수업이 아닌 튜터링 반으로 참가해 '드라마 한 장면 따라하기'로 상을 탔다. 


 “You guys are making history for Korea in DePauw!”


  랭귀지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을 때 교수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다. 역사를 쓰고 있다는 말은 많이 과장됐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너무 창피하지만 박근혜 전(前)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제일 먼저 축하해줬던 것은 미국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떠나온 이후에도 한국에 여전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학교에서 한국의 비중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학생 축제 즈음 학교 식당에 김치가 나왔고, 어제는 여학생 사교클럽(Sorority) 식당에 비빔밥이 나왔다고 한다. 교수들도 수업 자료에 한국 얘기를 넣기도 한다. 한국어 튜터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 역시 드포가 그런 기회를 준 것, 애국심을 심어 준 것에 고맙고 행복했고 그 때문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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