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학기를 3주 다닌 후 중도 휴학을 결심했다. 그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휴학하고 뭐하게?”였다. 사람들은 아마 “아르바이트해서 여행갈거야.”, “인턴할 거야.” 등 아주 다양한, 하지만 하나같이 자기계발 활동에 관련된 대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휴학을 했던 이유는 정말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을 위해서도,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였다. 

 휴학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은 수업 도중이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다른 흔한 대학생처럼 그저 과제가 싫고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귀찮은 정도인 줄로만 알았다. 개강 후 나는 내가 굉장히 나태하다고 느꼈다. 학교에 늦거나 아예 자느라 못 간 적도 많았고 겨우 간 날에는 스스로를 꾸역꾸역 강의실에 밀어 넣고 꿈을 꾸듯 멍때리며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보냈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짜증스럽게 하루를 시작하기를 몇 주를 반복한 후에야 내가 예전과는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무의미한 생활을 멈출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후 곧바로 부모님께 메시지를 통해 말씀드렸다.

 나중에 상담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나는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대학생이 된 후  불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겪었던 나는 힘없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상태도, 휴학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모두 두려웠던 시점에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너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라왔고 앞으로도 경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휴식이란 개념이 어느새 “뒤처짐”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휴학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도, 누군가에게 쉬고 있다고 말하기 두려웠던 것도 거기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쉬지 않고 달리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한다는 강박에 피곤했다. 한 순간도 무언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몰려오는 불안감에 위축돼갔다. 결정적으로는 성격까지 달라지는 것 같아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휴학으로 나의 감정을 돌봐줄 수 있었고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비교하지 않는 법을 고민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었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20대의 가장 소중하고 뜻 깊은 성장의 시간들로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 자신 아니겠는가. 존경하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은 “나“의 고민이라고. 이런 저런 이유로 묻어두었던, 세상에서 가장 심각했던 문제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번학기도, 그 다음 학기도 시체처럼 보냈을 것이다.

 사람마다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정도는 다 다르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신의 속도대로 선물 같은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휴식은 나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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