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강남역 10번 출구는 지난 2주간 시민들의 추모 물결로 뒤덮였다. 17일 오전1시 23세 한 여성이 강남역 인근 노래방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본 남성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강남역 살인 사건’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여성혐오’에 대한 남녀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에 본지는 여성 대상 강력 범죄 현황 및 우리나라의 여성혐오 성향 등에 대해 심층 취재를 했다. 

혐오의 분출구로 변한 강남역 10번 출구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근처 주점에서 일하던 34세 남성이었다. 피의자는 범행 동기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최초 진술했다. CCTV에는 범인이 범행 장소에서 약 1시간 동안 머물던 모습이 포착됐다. 범인은 남성 6명이 지나가는 동안 대기하다가, 일곱 번째로 피해 여성이 나타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과 피해 여성 사이에는 아무 연고가 없었다. 일부 시민들은 범인이 여성만을 표적으로 골라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를 ‘여성혐오’성 범죄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경찰은 22일 피의자의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서초경찰서 측은 “김씨가 체포 직후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고 진술해 여성혐오 범죄로 추정됐지만, 정밀 조사에서 정신질환에 따른 범죄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발표에도 시민들 사이에서 '여성혐오'라는 화두로 번진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일부 본교생들도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이며,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라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구체적인 범행 동기, 일면식도 없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본교생 ㄴ씨는 “이제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을 갈 때 몰래카메라, 성폭행을 넘어 살해의 위협까지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며 “나 또한 그곳에 없어서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생각해 지금 이 사회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불안함을 표했다. 한상완(사회·13)씨는 “가장 번화한 강남역 10번 출구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지나쳤을 공간”이라며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여성인권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와 같은 포스트잇과 발언들이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한다며 불쾌함을 표출했다. 남성 ㄷ(22)씨는 강남역 살인 사건을 혐오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ㄷ씨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프로파일러들의 분석과 범죄자의 진술만 봐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며 “유치원 여교사가 아이들을 폭행하면 그 여성이 유치원생을 혐오한다고 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폭력적인 성향으로 이어지는 여성혐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등 주요 표적을 ‘여성’으로 삼았던 강력범죄가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강력범죄란 살인, 강도, 강간 및 강제 추행, 폭력 사건을 말한다. 201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며 그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대상 강력범죄율 증가 이유와 여성혐오의 폭력적 성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주의적 인식 개선으로 인해 기존의 폭력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교 한국 여성연구원 김현경 기획연구위원은 “여성혐오의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것이며 우리나라의 여성대상 강력범죄는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여성혐오의 폭력적 성향이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여성이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것에 참아왔던 여성들이 견디지 못하고 문제 제기를 시작한 것”이라며 “온라인의 발달로 여성혐오와 남녀 갈등에 대한 글과 뉴스가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사회진출 증가로 큰 혜택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청년층 응답자 중 남성들의 41.3%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혜택을 받는 집단으로 ‘20~30대 여성’을 우선하여 꼽았다. 특히,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6.7%포인트 더 여성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연구위원은 “20대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대 남성보다 높지만, 30대 이후로는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 등의 일로 남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훨씬 높아진다”며 “여성과 남성의 전반적인 삶으로는 남성의 사회적 진출이 더 높아지는데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의 탓, 여성혐오로 투사하는 것은 일반화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의 여성혐오,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부쩍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최민영(커미·15)씨는 “부산 각목 폭행, 강남역 살인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늘고 있어 길거리를 다니기 무서워졌다”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혐오와 관련한 인식이나 범죄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의 경우, 사회적으로 진출한 여성을 문제가 있는 여성으로 그리거나 아이들의 문제를 워킹맘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여성의 인권이 신장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것에 대한 역풍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남성의 국가 경제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여성에 투사돼 여성혐오로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혐오’와 관련한 남녀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는 성별 갈등의 심화가 교육적인 시사점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 성에 대한 논의의 장이 펼쳐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면이 있다”며 “이런 성별 간 갈등이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고민으로 나아간다면 여성혐오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