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오후5시 인문관 111호 대회의실에서 2016 한국문화연구원 제21회 콜로키움 '헬조선의 초상 - <미지의 세계>의 얼굴 표상 분석'이 열렸다. 서울대 김홍중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wlguswlgus32@ewhain.net

  “이 얼굴의 주인공은 누군가요? 또 이 얼굴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요?”

  25일 오후5시 인문대학교수연구관(인문관) 111호 대회의실에서 한국문화연구원이 개최한 ‘헬조선의 초상-「미지의 세계」의 얼굴 표상 분석’ 콜로키움이 열렸다. 서울대 김홍중 교수(사회학과)가 연사로 나서 웹툰 「미지의 세계」의 주인공 조미지의 얼굴이 드러내는 표상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해 발표했다. 강의에는 약 100명이 참여했다. 

  이자혜 작가의 웹툰 「미지의 세계」는 평범한 대학생 조미지의 일상을 담은 만화다. 미지는 여성이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이른바 ‘N포 세대’ 청년이다. 일상과 인간관계 속에서 허둥대고 자학하며 내면에 상처를 쌓는 그는 ‘이번 생은 망했어’를 습관처럼 외친다. 

  미지는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그의 친구들은 소위 ‘힙하고 쿨한 예술종자’들로 풍족한 환경에서 풍부한 문화자본을 누리며, 그중에는 그가 쉽사리 얻지 못하는 주목과 환영을 공들이지 않고 받는 사람도 있다. 미지는 비정규직 부모와 빈곤한 가정형편을 바라보며 자조하는 동시에 친구들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들이 가진 매력이라는 자본은 미지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미지는 무관심의 대상이고, 이는 그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모멸감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미지는 무슨 꿈을 꾸며 살아갈까요? 그 힌트는 얼굴에 담겨있습니다.”

  김 교수는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얼굴’이라고 강조했다. “얼굴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소통에 필요한 중요한 매체 중 하나에요. 낯선 이와의 만남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믿고 안정적인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서로의 얼굴을 읽고 소통해야 하는 거예요. 얼굴과 얼굴의 만남이 바로 사회가 형성되는 출발점이죠.”

  그는 미지의 얼굴을 괴물적 안면과 사회적 안면으로 분류했다. 괴물적 안면은 미지가 숨긴 내면의 어두운 표정, 사회적 안면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어낸 얼굴이다. 공격적으로 드러난 이빨과 뱀처럼 사납게 찢어진 눈은 미지의 폭발적인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최대치로 끌어올려진 분노, 탐욕, 기쁨의 정서는 모두 이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난다. “괴물적 안면은 미지의 은밀한 내면에 숨겨진 채 드러나지 않아요. 미지가 타인에게 품는 불타는 질투심, 해악을 끼치고픈 폭력성, 때론 자신을 향한 엽기적 자학은 머릿속의 생각으로만 남아있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미지는 사회적 안면을 내세운다. 미지의 사회적 안면은 주름살에 가려져 생기 없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김 교수는 이 ‘박탈된 얼굴, 말라붙은 얼굴’이 미지가 지닌 계급적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미지가 지닌 취약성 즉 저소득층이라는 계급, 여성이라는 젠더, N포세대의 세 가지 사회학적 차원들이 중첩돼 사회적 안면이 탄생했어요. 반면 미지가 선망하는 또래들의 얼굴은 순정만화 그림체와 밝은 표정으로 표현되죠.”

  한편 박탈과 결여를 나타내는 미지의 사회적 안면은 혼자만의 얼굴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 괴물적 안면의 위태로운 본심을 속이면서 사회적 안면이라는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 7화 ‘인간세계2’에서 어린 조카를 보고 “드럽게도 인간이래요”라며 말한 미지의 속마음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닌 취약함을 꿰뚫어보는 대사다. “괴물적 안면 위에 사회적 안면을 띄우는 것은 미지와 같은 취약 계층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감정의 진심을 배반하고 진정성을 차단할 때 비로소 사회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즉, 서로에게 위선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사회가 유지되는 거예요.” 

  미지의 얼굴에 드러나는 괴물적 안면과 사회적 안면 사이의 모순을 만들어내는 배경은 미지가 살아가는 ‘헬조선’이다. 헬조선은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란 뜻의 접두어 ‘헬(Hell)’을 붙인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 사회’라는 뜻이다. 이는 신분사회였던 조선처럼 자산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신분이 고착화되는 사회의 부조리를 반영한 용어다. 김교수는 “헬조선의 핵심에는 맘껏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지의 얼굴은 ‘꿈’이라는 공적 자원이 제한돼 현재에 갇힌 ‘헬조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래는 서사와 상상을 통해 뚫어가는 재화이며, 사회가 만드는 공공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들에겐 자신이 처한 비참함과 빈곤을 살아있는 동안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 전망이 없는 것이죠.”

  김 교수는 미지의 얼굴이 보여주는 존재의 근원적 취약성과 그 배경이 되는 헬조선, 그리고 헬조선을 살아가는 이들의 ‘노오력’에 대해 말했다. 노오력은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기성세대의 말을 비꼰 것으로, 사회가 혼란하니 노력 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노오력은 노력하는 인간의 본성, 존재의 역동성을 포기하는 언어에요. 노력이 조롱받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지는 노력하는 힘 자체가 고갈된 헬조선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죠.”

  강연에 참석한 황선주(독문·12)씨는 “또래 집단 사이에서 농담 소재로 쓰이는 용어와 표현의 해석을 정제된 언어로 듣게 돼 좋았다”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학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는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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