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정말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은 어딘가에서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대사이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상대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성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남녀는 언제나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었으며 서로 다른 선천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두 개체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왜 우리는 자꾸 부딪히고 충돌하기만 하는 걸까?

  언젠가 남자인 친구가 물은 적이 있다. “여성학은 있는데 왜 남성학은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진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여성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이 남성학이기 때문이야.” 여성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서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심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선천적 조건인 힘의 차이로 인해 여성은 긴 시간 동안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남성보다 아래에 위치한 입장에서 지내왔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로 단순한 힘이 아닌 이성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성은 기나긴 억압 끝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성은 아직도 우리 안에 내재된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과 제도로 인해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다. 가지고 있던 습관을 쉽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남성은 그 동안 누려오던 우등한 위치를 쉽게 놓을 수 없고, 여성 역시 그 동안 받던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즉, 다른 것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공존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아직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화여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관심의 문제라기보다는,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더 옳은 것 같다. 새내기 시절에는 공학에 가지 못한 점이 조금은 아쉬웠고 왜 굳이 여학교가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서 여학교는 정말 궁극적인 집단지성의 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여학교의 학생으로서 이제야 우리의 권리를 알고 당당하게 외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비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오랜 시간 알고 지내왔던 친구들과의 거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남녀 차별은 기저에 내재해 있고 당연시되고 있다.

  여학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때, 그 때야말로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사회일 것이다. 남녀가 섞여 교육을 받는 학교의 대표직을 어느 한 성이 맡는 것이 암묵적으로 당연하지 않을 때, 그 때야말로 학교가 공정한 교육의 장으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런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이화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보다 더 잘 전하고 싶다. 이화의 그대, 그대의 공부로써 여성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회에 살기를 바란다. 나아가 우리는 다르지만 분명히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다 많은 이들이 알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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