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산티아고
이화 산티아고
  • 김동근 교수 (교목실)
  • 승인 2015.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걸으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축복

 눈이 시리게 곱게 물든 단풍잎으로 덮인 이른 아침 이대 교정을 거니는 행복이 아직도 마음 가득한데 어느새 겨울이다. 정문을 나가기 전 왼쪽 담장 너머로 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것을 사진으로 담느라 외국 관광객처럼 셀카를 찍던 올해 봄을 잊을 수 없다. 친구와 함께 꽃비 내리는 신촌 명물거리 벤치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꽃에 취해 따스한 봄볕에 몸을 맡겨보던 어느 주일 오후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이 되었다. 그런데 뭐니 뭐니해도 최고의 벚꽃길은 이대부속초등학교 옆길인 것 같다. 잠깐 피었다가 지는 벚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역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제나 피나 저제나 피나 계속 그리로 다녀 보았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그 장관에 나는 숨이 턱 멈추는 것 같았다. “야~ 정말 아름답구나” 한동안 서서 핸드폰으로 찍고 또 찍었다.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대단한 것 같다. 일산 백마역에서 곡산역까지 경의선을 따라 조성된 공원길이 내게 선사한 이 가을의 선물은 정말 최고였던 것 같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어느 단풍나무 한그루에서 느꼈다. 비가 온 다음날 이른 아침 산책을 하는 중 누런 풀밭 위에 붉은 단풍 나뭇잎들이 마치 유명한 화가의 명화처럼 곱게 떨어져 있었다. 어쩜 고와도 저렇게 고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함께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나 나름대로 걷는 방법을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10여분을 그렇게 걷노라니까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하 이거 좋구나. 이렇게 요 다음 전철역까지 걸어보자고 정하고 신촌로터리까지 걸어갔다. 등에는 땀이 차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게 걷기 시작하여 평균 거의 매일 일만 삼천 보 정도를 걷게 되었다.
예전에는 운전을 하면서 가던 길이었는데 걸으면서 예전에 만나지 못했던 간판들 그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떻게 하면 걷기 좋은 길을 만날 수 있나하고 핸드폰 속 지도 앱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ECC Fitness center도 몇 번 가보았는데 그것보다 전철역을 따라 걸으면서 느끼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좋았다. 죄송한 것은 빨래가 항상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신촌로터리까지 갔고 거기서 홍대입구역으로, 그리고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가좌역까지 걸었다.

 어떤 이는 골프를 치면서 걷고 어떤 이들은 북한산까지 가서 걷는다. 그러나 내게는 전철역 따라 걷기처럼 감사한 것이 또 없다.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힘들면 다음 역에서 전철을 타면 됩니다. 그리고 걷고 싶으면 아무 때나 내리면 됩니다. 전철역이 고마운 것은 손도 씻을 수 있고, 세수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앉아서 쉴 수도 있다. 또 목이 마르면 전철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마실 수도 있다. 힘들면 앉아서 쉬면된다. 나가라는 사람도 없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가면 된다. 이렇게 학교 가면서 걷고 집에 가면서 걷다 보면 무념무상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곡 중 Irish Blessing이라는 곡이 있다. 시를 쓴 이도 걸으면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가는 길마다 순풍 등에 지고 가기를/ 따스한 햇빛 네 얼굴 비추고/ 들판에는 단비 내리기 바라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 너를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네/ 주님의 오른손으로.”
걷는 자만이 느끼는 행복을 그대로 쓴 것 같다. 걸으면서 비워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이 행복은 아주 따스한 행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있어서 순풍이 뒤에서 불어오고 따스한 햇빛이 얼굴을 비추고 들판에는 단비가 내린다면 더할 나위없는 복이다. 거기에다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신다면 그야말로 은혜 위에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