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공정하지 못한 시험 ‘족보’ 공유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족보를 ‘인맥관리의 결과’라고 표현하는 등 소수의 학생끼리만 족보를 공유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일반적으로 족보는 강의의 과거 시험 기출문제나 요약본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족보를 참고해 시험을 보거나 과제를 제출한다. 족보는 교수가 직접 제공하기도 하고, 이전 학기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시험지를 돌려받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시험지를 돌려받지 않은 경우에는 시험 후 기억에 의존해 정리한 내용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족보를 교수가 직접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 족보를 구하기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 소수의 학생에게만 공유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본교에서는 소수에게만 공유된 족보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다. 경영대학(경영대)의 한 재무관리 수업에서 지난 학기 족보 그대로 시험이 나왔다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과목 ㄱ 교수는 지난 학기 수업에서 시험이 끝난 후 시험지와 답안을 제공했다. 친구를 통해 미리 시험지와 답안을 받은 일부 학생은 그대로 나온 문제를 미리 알고 있어서 논란이 됐다. 이에 일부 학생들은 ㄱ 교수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ㄱ 교수는 “지난 시험의 답안을 현재 수강하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직접 중간고사 30%, 기말고사 40%로 가중치를 적용하거나 기말고사 가중치를 70%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본지가 해당 과목 작년 2학기 수업의 시험지와 올해 1학기 수업의 시험지를 입수해 비교해본 결과, 시험문제가 완전히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학기 수강학생은 중간고사 역시 시험 문제가 똑같았다고 주장했다. 족보를 구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본 학생 ㄴ 씨는 “시험지를 받았을 때 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당황스러웠다”며 “미리 문제와 답안을 봤다면 시험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다른 강의에서 족보를 얻지 못해 억울했던 경험이 있는 학생이 있었다. ㄷ 씨는 “족보를 안보고 시험을 봤는데 옆에서 족보랑 똑같이 나와 쉬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억울했다”고 말했다.

 다른 과목도 족보와 비슷하게 시험이 출제되기도 했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족보 유무를 기준으로 수업을 고르기도 했다. 시간표 사이트(timetabl.com)에 몇몇 강의의 강의평가를 살펴보면, 한 북한학과 수업은 ‘족보를 보면 도움이 된다’, ‘족보를 보면 A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등의 내용과 ‘족보는 어디서 보나요?’와 같은 내용이 같이 올라와 있다. 경영학과의 수업 강의평가에도 ‘시험이 너무 족보와 비슷하게 나와 공부를 열심히 안 한 학생들도 잘 볼 수 있다’, ‘족보 외우는 것은 기본이다’와 같은 내용이 있다.

 족보를 둘러싼 갈등은 타대도 본교와 다르지 않다. 경희대 ㄹ(신소재·13)씨는 “족보를 얻지 못하고 시험을 봤는데 다른 친구는 족보를 얻어서 별도로 공부 안해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아는 선배가 없어 족보를 얻지 못해 억울했다”고 말했다. 숭실대에 재학 중인 ㅁ(법학·14)씨 역시 “족보가 선후배끼리 공유된다”며 “학회나 학교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맥이 없어서 족보를 얻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족보를 학습 자료로 이용하라는 차원에서 족보를 교수가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본교 ‘현대물리학과 인간사고의 변혁’ 과목의 김찬주 교수는 수업을 처음 맡은 2005학년도 1학기 수업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시험 문제와 답을 공개한다. 김 교수는 “기출문제를 감춰두는 것은 족보를 찾아 편법으로 공부하는 학생에게 이익을 주고, 정직하게 공부하려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 공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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