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소통의 창, 다시 돌아온 '대자보 전성시대'
민주주의 소통의 창, 다시 돌아온 '대자보 전성시대'
  • 김소연 기자, 김송이 기자
  • 승인 2015.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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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가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통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쇠퇴했던 대자보가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을 갖추고 돌아온 것이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자보가 학내 곳곳에 부착됐다. 대학생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자보에 싣으면서 대자보가 다시 한 번 주목받기 시작했다. 본지는 소통의 도구, 대자보의 시대별 변화를 정리해봤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자보, 형식의 다양화로 주목받다
“위대한 푸른집 령도자를 흠모하는 리화 녀벗들 올림”
본교 곳곳에 붙은 국정화 교과서 관련 풍자 대자보다. 본교를 비롯한 최근 대학가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이슈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퍼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정부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각자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정부에 대해 풍자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학 공식 대자보, 북한식 대자보 등이다. 
본교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포스터 형식의 대자보가 부착됐다. 대자보는 빨간색 배경에 ‘빠더최고’, ‘력사전쟁’ 등의 북한식 표현을 사용해 정부를 비판했다.
서울대에서는 수학 공식을 이용한 대자보가 부착되기도 했다. ‘국정화의 정리’라는 제목의 서울대 이경원(수리과학·13)씨가 작성한 대자보는 미분 공식과 평균값 정리를 활용해 광복의 해인 1945년과 국정교과서 도입이 강행된 올해 사이에 한반도 역사가 거꾸로 흐른 때가 존재한다고 표현했다.
SNS를 통해 확산된 이색적인 대자보 중에는 연세대 박성근(교육?13)씨가 작성한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입장)’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큰 인기를 끌었다. 본교에 부착된 포스터와 비슷한 이 북한식 대자보는 ‘립장’, ‘력사교과서 국정화를 선포하시었다’ 등의 말투를 통해 정부를 풍자했다.

△민주화 운동 시대에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대안언론의 기능
국내에서 대자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다. 언론 매체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대항, 민주화를 위한 대학생들의 외침이 대자보에 담겼다.
1980년 4월 서울대에는 연일 시국 및 학내문제와 관련된 학생들의 주장을 담은 대자보가 도배됐다. ‘정부 당국의 발언을 규탄한다’는 온건한 내용의 대자보는 민주화 운동의 활성화를 기점으로 대학가 전역으로 퍼지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생들의 주장을 펼치는 수단이 됐다. 또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언론에 보도되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는 역할도 했다.
대자보는 운동권 학생들이 자신의 일방적 주장만 게시한 것에서 나아가 ‘비판과 토론’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1986년 대학가에는 학생운동이나 학생회 활동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주장이 나오고, 이를 재비판하는 반박문이 연일 붙으면서 열띤 공방전이 펼쳐졌다. 본교에서는 학생 대표가 끌려가는 상황에 대해 단결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수업거부를 하자는 사안에 대해 과별 토론과 대자보 논쟁이 붙기도 했다.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전유물에서 1990년대 문화안내까지
1980년대 시국 관련 대자보로 도배됐던 대학 게시판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학가에는 총학생회가 영화, 연극 등 각종 예술 공연을 안내하는가 하면 학생들을 꾸짖는 교수 명의의 대자보가 붙기까지 했다. 학생들의 주를 이뤘던 대자보 작성의 주체가 교수, 학생처장 등 학내 구성원 전체로까지 확장됐다.
이러한 변화는 본교에서도 일어났다. 1992년 본교에서는 남녀가 만나는 미팅에는 여학생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미팅 더치페이’ 논쟁이 대자보를 통해 활발하게 전개됐다. 통계학과 여성학회 신입생들이 ‘미팅의 신문화’ 캠페인의 하나로 대자보를 게시하면서 대자보 한쪽에 반론을 적을 수 있는 의견란을 함께 마련한 것이다. 대자보는 ‘미팅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며, 당신이 진열된 상품이 아니듯이 상대방도 구매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의견란에 ‘취지는 좋지만,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개인주의적 경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는 반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대자보의 쇠퇴,??그리고 2013년?‘안녕들 하십니까’
<한국일보> 제 16358호(2000년 9월21일자)에는 ‘대자보가 사라졌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인터넷 웹 서비스의 대중화와 PC통신 등이 활발해지면서 아날로그 매체인 대자보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대자보는 1980~1990년대 담당했던 신문고 역할을 인터넷에 내주고, 동아리 홍보 등의 정보 알림 기능을 전담하게 됐다.
그러나 2013년 고려대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의 열풍은 다시 대자보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대자보 열풍의 시작은 고려대 주현우(경영·08)씨가 코레일 노조의 파업을 보고 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였다. 주 씨는 대자보를 통해 철도 민영화, 밀양 송전탑 사건, 쌍용자동차 노조 이야기 등을 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대학교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와 비슷한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다.
현재 본교에는 한국사 교과 국정화, 학과 구조조정, 노동 개악, 정규직과 보호론 등의 주제를 가진 대자보가 부착돼있다. 작성자도 개인부터 동아리까지 다양하다. 혹자는 대자보를 학생들의 불만 표출 장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자보는 약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통의 창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다시 다양한 형태의 대자보로 소통하는 것에 대해 본교 이재경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전공)는 “디지털적인 표현방식이 식상해 바꿔보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며 “기존 매체가 학생들의 생각을 담아내지 못하고,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