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죠.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이고 어떤 사람의 피부는 하얀색인 것처럼, 어떤 사람은 장애를 가진 것뿐이에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듯 장애도 다양성의 하나로 생각해야 하죠.”
장애를 문화적 다양성으로 보는 대학이 있다.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시에 있는 시라큐스대(Syracuse University)다. 시라큐스대는 미국에서 최초로 장애학을 만든 곳이며, 장애 관련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센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장애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펼친다.

 그렇다고 시설, 제도 등 생활적인 지원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시라큐스대에서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손쉽게 버튼만 눌러서 문을 열 수 있다. 장애 학생 멘토링 프로그램도 잘 갖춰져 있어 장애를 가진 신입생들은 곤란한 점을 멘토 선배들에게 물어 해결할 수 있다.

 시라큐스대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8월19일~8월29일 이대학보사, 이화보이스(Ewha Voice), EUBS로 구성된 이화미디어센터 해외취재팀은 시라큐스대의 장애에 대한 인식, 장애 학생들에게의 지원 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시를 찾았다.

 본지는 ‘편견을 넘어 문화로, 시라큐스의 장애 철학’을 2회 연재해 시라큐스대의 장애 관련 문화적 분위기와 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올해는 미국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 제정된 지 25주년 되는 해다. 7월1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장애인 퍼레이드가 열렸다. 미국은 국가뿐만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도 장애인 권리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시에 위치한 시라큐스대(Syracuse University)는 미국 최초로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을 만들어 교내·외 구성원들의 장애 관련 인식 개선을 도모한다. 또한 학내에서 학생들의 장애 인권 신장 활동도 활발하다. 이대학보사, 이화보이스(Ewha Voice), EUBS로 구성된 이화미디어센터 해외취재팀은 지난 8월19일~8월29일 장애를 ‘고쳐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는 시라큐스대를 찾았다.

 ‘label jars…not people’(라벨은 병에나 붙이세요… 사람에게 말고)
‘Don’t think we don’t think’(우리가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라큐스대 장애문화센터(DCC·Disability Cultural Center) 곳곳에 걸린 문구다.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편견도 갖지 말자는 의미를 재치 있게 전하고 있다.

 DCC가 속한 시라큐스대는 미국에서 최초로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 만들어진 대학이다. 더불어 장애를 의학적 시각보다 문화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대학으로도 명성이 높다. comic con(영화를 장애와 접목하는 행사), 운동경기 등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미국 최초의 ‘장애학’, 장애를 다양성으로 보는 학문
 시라큐스대의 장애학은 학생들이 장애를 사회문화 현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학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는 사회적 분위기나 법?정책의 장벽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연구적, 교육적 모델 개발이 교육 목표다. 이 학문은 장애를 개인의 활동을 제한하는 기능적인 손상으로 보는 관점을 거부한다. 장애학의 시각에서 장애는 ‘바로잡’거나 ‘치료돼’야 하는 특징이 아니다. 대신, 장애의 의미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시라큐스대의 장애학 수업으로는 포용적인 학교 교육 입문(Introduction to Inclusive Schooling), 포용적인 교육을 위한 협력적 가르침(Collaborative Teaching for Inclusive Education) 등이 있다. 교과목의 특징은 모두 장애가 다양성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수업을 가르치는 크리스틴 애쉬비(Christine Ashby) 교수는 “장애를 가진 학생이든 장애를 갖지 않은 학생이든 교실에서 포용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한다”며 “일반 교육 선생님 지망생과 특수 교육 선생님 지망생 구분 없이 통합적인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라큐스대 특수교육, 장애학 전공자이자 장애 관련 활동 단체인 BCCC(Beyond Compliance Coordinating Committee) 부회장인 송요성씨는 “장애학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학문”이라며 “장애학을 통해 개인의 차이점을 다양성으로 존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 관련 문화 행사를 여는 DCC
 DCC는 시라큐스대에 2011년 만들어진 장애 관련 센터다. 장애 이슈에 문화적으로 접근하자는 모토를 가진 DCC는 미국 내에서도 실험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이곳은 장애 학생을 물리적으로 돕는 장애서비스사무실과는 사뭇 다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교육적, 문화적 인식 개선 활동을 캠퍼스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다. 시라큐스대에도 장애 학생을 물리적으로 돕는 장애서비스사무실(ODS·Office of Disability Service)이 있지만, DCC와 분리된 채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DCC에서는 장애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comic con, 운동경기, 시 쓰기, 창의적 글쓰기 등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장애의 역사, 장애의 정치학 등에 대한 교내·외 구성원들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다. DCC는 장애 자체도 문화적 경험의 일부이고 장애에는 여러 문화적 양상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교육 목표의 하나로 DCC의 comic con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DCC 다이앤 와이에너(Dianne Wiener) 센터장은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남성, 백인”이라며 “장애인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이런 슈퍼히어로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DCC는 시라큐스대의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Orangeability)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 운동회의 상징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 캐릭터다. 운동회에서는 휠체어 농구, 휠체어 럭비, hand cycles(손으로 페달을 움직여 자전거 경기를 하는 것), sled hockey(썰매를 타고 하키 경기를 하는 것) 등이 진행된다. 이들은 휠체어를 탄 채 양손을 힘껏 뻗어 농구공을 던졌고, 상대의 공을 빼앗기 위해 몸 던지기를 사리지 않는다. 휠체어 대신 썰매에 올라타 넓은 아이스링크를 누비며 하키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장애는 이들이 최선을 다해 운동 경기를 펼치는 데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

 와이에너 센터장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항상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 역경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이 가진 정체성의 여러 측면 중 하나가 장애일 수도,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 운동 밀접하게 연결된 인식 개선 활동…학생 단체 활발
 시라큐스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장애 관련 모임을 하고 활발하게 활동한다. 인권 운동을 하는 학부생 모임 DSU(Disability Student Union)와 더 실질적인 개선 활동으로 이어나가는 대학원생 모임 BCCC가 대표적이다.
DSU는 캠퍼스에서 장애 관련 이벤트를 열거나 매주 모임을 가진다. 교내 다른 인권 운동 단체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Orangeability의 휠체어 농구, 휠체어 럭비와 같은 운동 경기도 DSU에서 기획한다. DSU 크리스틴 캐일빅(Christine Kalebic) 회장은 “사촌이 장애를 갖고 있어서 장애학에 관심을 두게 됐고 관련 활동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BCCC는 대학의 정책과 실행에의 변화를 위해 더 활동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합리적 편의 제공과 장애를 가진 교직원의 고용에도 힘쓴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적극적인 접근성(accessibility)으로, 이들은 장애 학생과 장애 교직원이 형식적인 평등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인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 BCCC 송요성 부회장은 “접근성은 단순히 장애를 가진 학생과 장애를 갖지 않은 학생의 출발점을 똑같이 해주는 게 아니다”며 “시발점이 다른 것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바꿔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접근성을 똑같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라큐스대에는 개개인의 차이에 가치를 부여해 대학 환경을 장애 친화적으로 조성하는 대학원 학생 단체가 있다. BCCC가 그것이다. 8월25일 BCCC의 저스틴 프리드만(Justin Freedman) 회장과 송요성 부회장을 만나 BCCC의 모토와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BCCC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ADA가 통과된 지 25년이 지났다. 우리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규정에 안주하기보다 그 법을 넘어 실질적으로 장애 학생들이 맞닥뜨리는 장벽을 없애기 위해 행동하는 일을 한다. 장애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는 교내 포럼을 열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포용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프로그램, 강연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BCCC의 목표는
시라큐스대의 장애에 대한 개념을 재정비해 장애를 다양성의 한 형태로 이해시키는 것이다. 장애는 대학의 교직원, 학생 사회 안에서 다양성을 논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 내의 분위기를 장애인들에게 포용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학 구성원에게 학습 경험이 된다. 또한, 이런 환경 조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장애는 대학이 다양성에 대해 말할 때 그 일부가 돼야 한다.

 다른 목표는 장애학 프로그램에 대한 대학의 인지와 투자를 늘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 학생들이 살기 편한 기숙사 시설을 대학이 만들게 하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대학 전반에 걸친 부서에 장애 교직원을 고용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은
학교 내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청각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어느 정도는 제공되고 있지만, 캠퍼스 모든 곳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우리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은 학교 안에서 영화 상영 등을 할 때 자막 서비스와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시행하도록 유도하는 활동이다. 이는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장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다.

-DSU(Disability Student Union)와 어떻게 연대하나
DSU는 시라큐스대 학부생으로 구성된 단체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애 관련 활동을 한다. 우리는 DSU와 함께 연사를 초청하기도 하고 장애 관련 영화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는 기숙사 시설에 대한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 학생이나 교직원이 드나들기 쉬운 기숙사 방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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