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찰할 수 있는 쉼은 또 다른 학(學)

“뭐하려고?”
“뭐했는데?”


  휴학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필자는 지난 학기 충동적으로 휴학원서를 제출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밥을 거르고 싶지 않았고, 광화문 교보문고 바닥에 앉아 하루 종일 읽고 싶었던 책들을 돌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휴학 후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해주시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을 수 있었고, 광화문 교보문고 단골손님이 됐다.

  이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질문자가 기대하는 답과 방향성이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쉼은 ‘뭐하려고?’, ‘뭐했는데?’라는 질문에 답이 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쉼이 불편한 세상이다. 필자는 휴학이라는 말 그대로 학(學)을 휴(休)하고 싶었을 뿐인데 인턴, 대외활동, 공모전 등 또 다른 학(學)들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휴학 시기에 배워야 할 것도, 경험해야 할 것도 참 많았다. 의무화된 경험 속에서 필자가 정한 나름의 휴식 철학은 갈 곳을 잃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한 케이블 채널에서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급속도로 인기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화면 움직임은 더디고, 출연자들의 대화는 일상적이며, 산골 혹은 어촌으로 장소 또한 인위적이지 않다. 크게 꾸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약 16%에 가까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계의 ‘돌연변이’가 됐다.

  프로그램의 취지 또한 단순하다. 삼시세끼라는 이름 그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차려먹는’, ‘느리지만 천천히 가며 알게 되는 평범함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그램 출연자들 또한 ‘뭐야, 정말 이게 끝이야?’를 끊임없이 외친다.

  이처럼 삼시세끼의 인기 원동력엔 쉼이 있다. 무언가 부족한 듯 보이지만 핵심이 있고, 느리지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1분 1초가 아까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시간 결핍, 쉼 결핍을 잘 짚어낸 듯하다.

  쉼이 화두가 되면서 최근 한 방송사는 메인 뉴스 한 꼭지로 ‘시간 빈곤’을 다루기도 했다. 앵커는 한 외국 언론인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나라를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많은 시간을 노동, 학업 등에 투자하지만 이와 반비례 해 삶에 대한 만족도는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은 일에, 대학생은 스펙에, 전업주부는 가사 일에 쫓기며 시간 빈곤을 겪고 있었다. 뉴스에 따르면 의식주 등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 약 90시간이다. 남는 78시간 중, 노동하는 시간을 하루 평균 10시 간 씩 총 70시간으로 잡아 남는 시간을 계산하면 8시간이다. 남은 8시간. 우리는 과연 진짜 잉여가 될 수 있을까.

  쉼에 대해 조금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쉼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때 삶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필자 또한 수요일엔 수업을 일찍 마치니, 지하철 타고 광화문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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