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개봉한 영화 '러브픽션'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여주인공 희진(극중 공효진)의 '겨드랑이 털'이 등장하는 베드신이다. 으레 없어야 할 것이 갑자기 나타나자 남주인공 주월(극중 하정우)은 당황하고 희진은 그런 남주인공의 모습에 실망한다. '너도 있지 않느냐'며 그를 쏘아붙이는 희진에게 주월의 다급한 변명이 이어진다. '아니, 남자하고 여잔 다르지!'

  지난학기 수강한 대중문화 관련 수업에서 필자는 '여성 체모 담론'을 주제로 조모임을 했다. 이 주제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두된 여성 체모 담론은 무엇이고, 이 담론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연구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 텍스트들을 수집해 살펴본 결과 우리 조는 여성 체모 담론을 성(性)적 층위와 상업적 층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적 층위에서 보았을 때, 여성의 체모는 여성성의 강화를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과거 이슬람권 문화에서 성인 여성의 체모를 제거함으로써 여성을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둘 수 있었던 점, 서양의 미술 작품에서 여성이 체모 없이 재현되었던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대립적으로 성을 구분, 재현하고 이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털이 많은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반대로 털이 없는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여성체모담론은 상업적 이데올로기와 만나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과거 미시적인 실천행위였던 체모 제거가 자본 아래 제모 관련 산업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20세기 초 처음으로 여성용 면도기를 출시하고 대대적인 겨드랑이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여성용 면도기는 질레트의 면도기 판매 수치를 2년 만에 두 배로 끌어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권력이 인간의 몸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이르러 '생체권력'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체권력을 내면화하여,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응시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정상ㆍ비정상을 범주화하고 사람들은 정상범주에 들기 위해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러브 픽션' 에서 주월이 희진의 겨드랑이 털에 보였던 부정적 반응, '색계'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대중의 관심 등은 이러한 범주가 얼마나 잘 내재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체모가 관리된 것은 정상,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 정상, 비정상 범주에 점점 더 많은 신체 부위들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직각 어깨, 꿀벅지, 소두 등 최근 들어 몸에 관련한 신조어들이 많아졌다. 허벅지는 굵어야 하지만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허리는 가늘면서 골반은 넓어야 한다. 이에 따라 '자기관리' 라는 이름 아래 놓인 신체부위가 늘어나게 됐다. 어쩌면 머지않아 사람들의 발가락 모양까지 관리해주는 업체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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