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탄생 125주년 기념

 

헐렁한 바지 차림에 커다란 구두를 신고 지팡이를 든 채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는 한 콧수염 신사. 20세기 영화계를 주름잡던 영화감독이자 배우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이 만든 극중 인물이다. 채플린의 이름을 따 그대로 ‘찰리’라고 불리는 이 신사는 100년동안 우리를 웃기고, 눈물짓게 했다. 올해는 채플린 탄생 125주년 이자 채플린이 영화인으로 데뷔한 지 100주년 되는 해다. 채플린은 1914년 그의 첫 영화 ‘생활비 벌기(1914)’에 출연한 이후로 81편의 영화작품에 감독과 배우로서 참여했다. 모든 작품에 휴머니즘을 담으려고 했던 채플린. 그가 만든 영화는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본지는 채플린의 영화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1914)’, ‘키드(1921)’, ‘시티 라이트(1931)’, ‘위대한 독재자(1940)’ 네 편을 통해 영화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그의 영화론을 돌아봤다.

△‘리틀 트램프’, 떠돌이 신사의 등장
연미복 차림의 콧수염 신사가 과장된 몸짓으로 거리를 누빈다. ‘리틀 트램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캐릭터는 채플린이 직접 창조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채플린이 영화인으로 데뷔한 이후, 대다수의 채플린 영화에 등장하면서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채플린이 이 캐릭터를 만든 것은 연기 무대를 연극에서 영화로 옮기고 나서 부터다. 연극과 달리 영화는 시공간적 제한이 많아 채플린의 연기가 편집될 수밖에 없었다. 채플린에게는 그의 연기를 부각시킬 새로운 독창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꽉 끼는 상의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짧은 콧수염이 있는 떠돌이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떠돌이 신사 캐릭터가 관객에게 최초로 공개된 것은 단편영화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에서다. 이 단편영화에서 채플린은 중산모를 쓰고 지팡이를 든 채 채플린 특유의 과장된 몸짓을 보여준다. 6분짜리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자동차 경주 촬영을 방해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화면 왼쪽에서 나타나 오른쪽으로 퇴장하기를 반복하고, 카메라를 향해 다가서거나 등을 돌린 채 카메라 앞에 기웃거리는 모습은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떠돌이 찰리를 잘 보여준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채플린의 떠돌이 역할은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영화 제작자들을 기대하게 했다. 결국 그의 우스운 몸짓이 담긴 코미디가 인기를 끌면서 그 이후로도 채플린은 영화계에서 떠돌이 신사로 사랑받을 수 있게 됐다.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영화의 장르를 결합하다
사진기로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 남는 위대한 발명이다. 줄거리도 없이 열차가 역에 들어오는 장면만 찍은 최초의 50초짜리 영화에도 극장에 앉아있던 수많은 관객은 환호성을 보냈다. 이후 영화는 발전을 거듭하며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는 대중적인 오락이 됐다.

이러한 영화의 발전 속에서 채플린은 두 가지 영화 장르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한 가지 영화형식만 고집하던 당시 영화계의 분위기에서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인 ‘키드’가 만들어졌다. 장편영화 ‘키드’는 드라마가 결합된 슬랩스틱 코미디다. 내러티브의 힘을 알고 있던 채플린은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약 60분간의 장편영화에서 새롭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단편영화 작업만 하던 채플린은 ‘키드’를 만들기 위해 약 15개월을 투자했다. 편집과정에서 영화사와 마찰이 생기자 채플린은 호텔 방에서 편집을 하기도 했다. 그가 촬영에 사용한 필름은 500롤. 편집시설 하나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그는 2000컷이 넘는 필름을 직접 잘라붙인 끝에 장편영화 편집을 마쳤다. 동국대 전산원 신성민 前교수(영화영상제작학과)는 “과거에는 필름편집기인 스플라이서(splicer)로 필름 컷을 자른 뒤, 테이프로 이어 붙이는 작업방식이었다”며 “손수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말하지 않는 채플린,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
영화에서 음향이 지니는 힘은 크다. 그러나 1895년 영화가 처음 발명된 이후 1927년까지 무성영화뿐이었다. 당시 영화에는 대사나 현장음 없이 음악만 영화에 깔렸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상영관에서 생음악으로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무성영화 특성 때문에 당시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행했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언어의 도움 없이 화면만으로도 의미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희극배우 시절부터 몸으로 유희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무성영화 ‘시티 라이트’에서도 익살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채플린은 유성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오랜 기간 무성영화를 고집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티 라이트’는 유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졌다. ‘시티 라이트’가 만들어진 1931년은 이미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1927)’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대사 없이 관객을 웃길 수 있는 팬터마임(pantomime)의 대가였기 때문에 무성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 훗날 채플린은 그의 자서전인 「나의 자서전」에서 당시 유성영화를 보고 음향이 기술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표현되는 것에 거북함을 느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유성영화가 새롭게 부상하던 시절에도 그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티 라이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채플린이 직접 작곡한 음악이 곁들여진 ‘시티 라이트’는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가 된다.

△나치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영화에 입히다
 채플린이 오랜 기간 고집하던 무성영화의 시대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주는 음성 기술이 등장한 후 결국 끝났다. 동시에 채플린을 대표하던 슬랩스틱 코미디의 메시지와 표현은 줄어들게 됐다. 이후 그는 소리를 곁들인 유성영화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유성영화는 과장된 몸짓 없이도 메시지가 전달되자 채플린은 대사로서 메시지를 담기로 한다. 이전까지도 채플린은 기계 문명을 비난하는 영화 ‘모던 타임스’ 등을 통해 몸짓으로 사회를 풍자하곤 했다. 그러나 유성영화의 배우들은 더욱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사를 통해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첫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나치 독일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채플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가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 분노하며 집단 수용소에서 벌어지던 나치의 잔악상을 영화로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위대한 독재자’에서 팬터마임과 대사를 활용해 자신과 동갑인 히틀러를 풍자한다. 그리고 마지막 연설 장면에서 전쟁과 파시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채플린의 유성영화는 파급력이 컸다. 독일에서는 그의 영화의 수입이 금지됐고 미국 FBI는 채플린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했다.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채플린이 요주 인물이 된 것이다. 전북대 김경근 교수(역사교육과)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은 인류를 억압하는 거대권력을 비판하는 인도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보면 공산주의적 선전이라고 해석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Kid Auto Races At Venice, 1914)
찰리 채플린을 상징하는 캐릭터 ‘리틀 트램프’가 등장한 단편영화. 미국 LA의 베니스(Venice)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자동차 경주대회에 리틀 트램프가 나타나 열심히 촬영하는 카메라맨 앞에서 촬영을 방해한다. 카메라맨은 화가 나 트램프를 내쫓지만, 그는 계속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이 촬영되길 바란다.


키드(The Kid, 1921)
채플린의 어린 시절을 모티브로 한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젊은 여자가 갓난아기를 키울 능력이 없자 아기를 버리게 된다. 찰리는 우연히 그 아기를 발견한 뒤 자신의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아기를 얼떨결에 키우게 된다. 그러나 예쁘게 자란 아기를 젊은 여자가 다시 데려가면서 찰리는 실의에 빠지게 된다.


시티 라이트(City Lights, 1931)
유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 도시를 배회하던 떠돌이는 아침 산책길에 꽃 파는 눈먼 소녀를 만난다. 떠돌이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소녀의 꽃을 사주자, 소녀는 그를 부자로 오인한다. 소녀에게 애정을 느낀 떠돌이는 부자 행세를 하며 소녀와 가깝게 지내며, 수술비용을 마련해 주기로 약속한다.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담겨 있는 채플린의 유성영화.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한 국가에 독재자 힌켈이 나타나 유대인을 탄압한다. 그러나 이후 힌켈은 비슷하게 생긴 유대인 이발사로 오해받아 체포당하고 이발사는 반대로 독재자 힌켈로 오해받아 장병 앞에서 연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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