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증권방송 아나운서

 

 바닥에 커피가 말라비틀어진 컵 서너 잔. 그리고 밤새 환하게 켜져 있던 스탠드.
 매일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주식 시장까지 살펴보고 방송 원고를 작성하며 책상 위에서 잠드는 생활을 해 온 지 어느덧 넉 달이 다 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한 필자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십오 분 동안 주식 시장 개장 상황과 최근 증시의 핵심을 생방송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방송은 오전 8시45분에 시작하지만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유럽 증시 마감 상황을 확인한다. 그 뒤 그 날 방송에서 소개할 증권가 최대 이슈를 정리한다. 여기서 정리라 함은 대본을 쓰는 것을 말한다. 현재 일하고 있는 방송사는 작가가 없을 정도로 매우 작은 방송사기에 스스로 대본을 준비해야 한다. 대본을 쓰면서 우리 시간으로 오전 6시에 폐장하는 미국 뉴욕 증시 상황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다듬은 뒤 8시까지 스튜디오에 간다. 방송을 함께 진행하는 남성 앵커와 PD, CG 팀과 오늘 방송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대기한다.

 한 시간 십오 분 동안의 생방송이 끝나면 필자는 금세 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두 번의 수능을 치르는 동안에도 끝끝내 오르지 않는 경제 성적에 좌절하며 필자는 경제와는 담을 쌓았다. 한 마디로 입사 직전까지도 필자는 경제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원고를 대신 써주지 않는 이곳에서 진행자로 살기 위해 방송만 끝나면 공부에 매진한다. 이화에 들어오려 스스로 때려가며 공부했던 수험생 때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온종일 주식 시장을 들여다보고, 증권사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리포트들을 분석한다. 그러다 중간중간 녹화 방송도 찍고, 내레이션을 녹음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절로 책상 위에서 쓰러져 잠들게 된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화려한 아나운서의 삶은 필자에게 없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방송준비를 해야 하기에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거나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포기했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걸 최고의 취미로 삼는 필자로서는 인생의 낙을 잃은 것임에도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접촉 사고가 났다. 차 앞범퍼가 다 부서질 정도로 작지 않은 사고였기에 카메라 앞에 앉고 나서도 손이 덜덜 떨렸지만, 카메라에 방송 중임을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마음은 차분해지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굳이 지면을 할애해 방송을 향한 필자의 사랑을 고백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취업을 앞둔 이화인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그 일이 맞는지’, ‘그 일의 고된 부분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길 바라서다. 현명한 이화인들은 이미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방면으로 검토를 끝냈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취준생 입장에서 자신이 꿈꾸는 곳에 대해서 어두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본인이 놓친 부분은 없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길 권한다.

 필자는 현역 아나운서들의 설명회를 많이 따라다녔다. 질의응답 시간을 노려 ‘아나운서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보다는 실제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질문했다. 보통 자신이 소속된 곳에 대해 부정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자연히 어딘가 두루뭉술한 답변밖에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설명회를 통해 만나게 되는 아나운서 선배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늘어가면서 실제 아나운서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됐다.

 사람들은 인생의 절반을 일하는 데 쓴다고 한다. 먹고, 자고, 사랑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일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일은 곧 현실이고 삶 그 자체다. 내가 취직을 준비하면서 꿈으로 현실을 감싸버리진 않았는지 환상의 이면을 들춰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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