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20대는 학창시절을 학업에 매진하며 보냈다.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가고 2달에 한번 시험을 보고 그리고 또 다시 새학기를 맞았다. 물론 그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먹던 소세지 빵, 시험을 망치고 친구들과 갔던 노래방, 야자시간에 몰래 꺼내보던 PMP 속 인터넷 소설. 그러나 매순간 우리의 10대를 지배했던 단어는 ‘공부’ 이자 ‘좋은 대학’ 이었고 ‘좋은 직장’ 이었다. 그것이 사회가 정한 행복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20대, 누군가는 원하는 대학을 갔으나 누군가는 그러지 못했다. 11월 둘째 주 목요일은 교실에서 다같이 웃고 떠들던 19살 어린 청소년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줄을 세웠다. 평등했던 아이들이 사회적 약자와 강자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대가 된 지금, 약자는 약자대로, 강자는 강자대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약자가 되어버린 학생들이 취업, 결혼 등의 문제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 학벌로 인하여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어 많은 곳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문제는 강자가 된 사람들이다.

   좋은 대학에 와서 기뻐했던 것도 잠시, 페이스 북을 통해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콱 막힌 듯 답답하다. 친구의 좋은 소식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럴리가 없는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언젠가 화를 볼 것이다’

   이는 사회가 만들어 낸 20대의 온상이다. 사회는 10대 어린 학생들에게 학업만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사회적 보상을 기대하며 이에 순응했다. 그러나 사회는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공부만으로 사회적 강자가 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학생들의 마음을 후벼팠다. 학생들 스스로 사회가 정한 틀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20대는 아는 것은 많으나 너무나 미숙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주관’ 이다. 여태껏 타인의 삶, 즉 사회가 정해준 삶을 살아 온 20대에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타인의 행복을 받아들이고 나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20대를 살고있는 우리가 해야할 것은 스펙이 아닌 성찰이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이제는 마라톤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가장 나를 잘 보여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남자친구와 싸웠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와의 연애상담이 아니라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를 돌아보는 일이다. 옷을 살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친구의 의견, 요즘의 트렌드가 아니라 나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내가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이다. 내가 직장을 고를 때 고려할 것은 남들이 ‘와’ 하는 직장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 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부터 시작해서 취업을 하고 커리어를 쌓는 일까지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만 사회의 틀에 갇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타인, 혹은 사회가 정해준 행복이 아닌 나의 행복을 찾는 길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