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바쁜 일과에 젖어 미디어를 멀리하고 지낸 지가 꽤 되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는 하지만, 출퇴근길에 듣는 라디오 뉴스와 인터넷을 열면 쏟아지는 포털사이트의 소식들에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간에 쉽게 노출이 되어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세상의 소식들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나의 무의식적 의지가 작용한 것이리라. 그 기저에는 미디어에 대한 나의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어떠한 사실이든, 내가 이해할 만한 사실적 근거들을 듣기도 전에 추궁 혹은 여론몰이들이 흔히 등장한다. 이미 사실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그 사람이나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인 의견들이 근거 없이 난무하며 결국은 정치적 싸움이 되는 꼴을 종종 보곤 한다. 누군가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근거들을 물을라치면, ‘왜 따지느냐’, ‘너는 어느 편이냐 입장부터 밝혀라’ 등의 요구를 받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러한 편 가르기는 사실에 집중력을 잃고 두려움에 의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내가 지난 이십 년 동안 배운 ‘학문’에 전념한다는 것은 ‘어떠한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논리를 세우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적 근거를 찾고, 그 근거 안에 허점이 없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하여 더 나은 새로운 논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이다. 이는 나처럼 자연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연구실에서 실험들을 진행할 때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 접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항상 강조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과학적 사실 중 이미 반세기 이상을 수많은 과학자가 연구하여 유사한 결론을 얻은 내용은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그만이지만, 최근에 나오고 있는 과학적 근거들은 그냥 수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시작된 학문인 후생유전학과 영양유전체학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잘 정리된 이론만이 아닌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구체적 증거들을 전달하며 난감한 경우가 많다. 상반된 결과를 설명하게 되는 경우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둘 중 무엇을 외워야 하나요?’라는 질문들. 그때마다 나의 바람은‘실험의 결과들은 실험조건과 대상에 따라 상이할 수 있으며,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상이한 결과 안에서 근거를 따져 논리를 만들고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더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여야만 한다’는, 그 과정을 학생들이 이해하고 스스로 그 근거들을 비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에 흔히 등장하는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논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논점을 흐릴 때 이러한 흐름을 짚어내어 다시 올바른 초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로 공부를 한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 연구실 학생들의 소개로 요즘 유행한다는 ‘응답하라 ~’라는 극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내용을 잘 모르지만 1990년대 초반에 신촌에서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재미있는 소품들과 익숙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그때의 나의 대학생활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 즐거운 기회가 되었다. 그런 즐거움 끝에 내가 그때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던,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는 순간, 입속에 살짝 부끄러움이라는 쓴맛이 돌았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그때 대학을 다니며 수업시간과 동아리, 토론 등에서 배우기 시작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가 있었기에 적어도 지금까지 과학적 사고의 끈을 놓치지 않은 것이 아닐까. 20년 후 ‘응답하라 2013’이 방영할 때쯤 지금 우리 학생들이 뒤를 돌아볼 때, 본인의 우리 이화에서 배운 ‘생각하는 방법’을 떠올리며, 여전히 과학적 사고의 힘으로 그들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 두려움 없이 세상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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