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점점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늘어가는 동성애 콘텐츠의 숫자는 그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이것은 사람들의 동성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그에 따라 동성애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의 대부분이 “동성애 콘텐츠를 자주 접하는 사람은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생겨 성 정체성이 동성애자로 변형될 수도 있다”라는 점에서 아직 그 논의가 충분히 전개되지 못함을, 그리고 그 논의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콘텐츠들을 보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10개라면 그중 9개는 이성애에 대한 콘텐츠다. 요즘 늘어났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그 수가 이성애 콘텐츠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동성애 콘텐츠를 접한다고 해서 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가? 이러한 주장에서는 인간의 지성을 무시하는 뉘앙스마저 풍겨오는 듯하다.

  동성애 콘텐츠는 오히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는 개인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막연히 의심하다가 ‘인지하게 되는’ 경우다. 이를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변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여기면서 사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자신의 identity이므로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은 자신이란 존재에 대해 한없는 의문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콘텐츠가 성 정체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수많은 이성애 콘텐츠를 접한 동성애자들은 모두 이성애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성애 콘텐츠는 동성애 콘텐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애 콘텐츠를 아무리 많이 접한다 해도 동성애자들의 성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 한낱 콘텐츠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동성애 콘텐츠를 접하면 동성애자가 된다.”고 말하는 위의 주장에는 “콘텐츠를 통해 성애가 전염된다.”라는 전제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성애는 전염되지 않는다. 이성애자 친구가 동성애자 친구를 두고 있고, 그 친구가 동성애인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성애자 친구가 동성애자로 변모하진 않는단 얘기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동성애가 전염된 것이 아니라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동성애 콘텐츠는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만든다.” 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다.

  동성애 콘텐츠는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변모’시키지 않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해답, 또는 힌트를 제공한다. 이 기능에 충실하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콘텐츠가 많으면 좋겠지만, 현 시점에는 동성애의 성적인 편견에 부응하는 콘텐츠가 많다. 만일 이 기능에만 충실하고, 편견에 부응하는 성적인 부분만을 강조하지 않은 중립적인 동성애 콘텐츠가 늘어난다면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을 가지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동성애 콘텐츠를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지 말고 발전시켜 문화 콘텐츠의 한 갈래로 소비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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