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돌아왔다.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을. 그러나 여전히 도서관 책상 위에 교양서적 대신 놓여있는 취업준비서는 보는 이를 부끄럽게 만든다.

  현대인의 삶에서 독서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빠르게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그 정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미 다른 정보가 자리를 채운다.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한 현대인은 이미 오래된 정보가 되어버린 책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처럼 정보가 급속도로 순환하는 현대사회에서 책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에서 젊은 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10월21일 SBS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작년, 도서관을 이용한 사람 수는 약 179만 명이다. 약 2400만 명이 도서관을 이용했던 2000년과 비교해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수치다. 세계에서 최초로 책을 만들어낸 나라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중 대학생의 절반가량은 한해에 단 한 권도 책을 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문의 전당에서 공부한다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조사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독서량이 줄어든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의 경우 읽는 책의 대부분은 문학이나 교양이 아닌, 취업 관련 전문 서적에 불과하다. 독서가 교양을 쌓기 위한 방법이 아닌,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젊은 계층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편독은 책의 멸종을 재촉한다. 혹자는 취업준비서 역시 책의 한 종류로 분류해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취업준비서는 독자에게 다만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결국, 이를 독서로 명명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취업준비서에서 당신이 찾아내는 것은 지식이 아닌,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독서는 정녕, 효율성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인가. 책을 읽을 때 들여야 하는 시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교양이 적다고 느낀다면, 독서는 분명 현대 사회의 약육강식 체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서가 아직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책이 지니는 절대적 지식이 바로 그 이유다.

  책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바로 ‘선택’과 ‘기록’이다. 적어도 당신이 집어든 책에 적혀있는 내용은 오랜 시간 선택돼 기록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통일신라 시기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서부터 약 750년 간 이어져온 책의 기록은 선택의 과정을 통해 이미 검증받은, 유의미한 정보가 된다.

  책으로부터 비롯된 인문학적 소양은 한 줄짜리 스펙보다 의미를 지닌다. 단기적인 취업정보로 무장한 사람보다는 책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보다 깊은 교양과 잠재력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만으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듯 취업준비서만으로는 마음을 키울 수 없다. 오랜 기간 숙성돼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음식처럼 역사와 함께 쌓여온 지식이 곧 힘이 된다. 750년의 선택의 결과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공자(孔子)는 독서가 인간의 기본소양이라 했다. “사람이란 그 얼굴이나 용기가 조상 또는 가문 때문에 이야기할 상대가 되는 건 아니다. 오로지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빛바랜 듯 보이는 책의 명성을 다시 되새겨볼 때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