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수업에서 어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여러분, 하루쯤은 학교 오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다 폭 빠져 조금 늦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부디 여러분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세요. 나에 대해 돌아보거나 나의 청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하도록 하세요.”

  청춘을 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시작하는 성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을 직접 그리는 나이가 된 젊은 날. 청춘은 시작이다. 그러하기에 방황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는 끊임없이 젊음에게 완벽하길, 바쁘길, 실수 없길 요구한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실수를 하면 뒤처진다고 손사래 친다. 혹은 발생하는 실수조차 한편의 각본같이 그를 통해 성장하고 그 결과를 인생역전 스토리마냥 풀어내길 바란다. 오늘도 어느 청춘은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닌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전공을 선택하였고, 어느 청춘은 자기소개서용 스펙들을 쌓기 위해 오늘 하루 분주했다. 오늘도 너무 많은 청춘은 소리 없는 강요에 의한 삶을 살아냈다.

  만물이 푸른 봄철. 따뜻하고 찬란하며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젊은 날이다. 그러나 최근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강요된다. 사회는 자꾸 억지로라도 아프길 강요한다. 아프니까 청춘이어야 하고, 청춘은 흔들려야 한다고 말한다. 청춘은 힘들어야 하고 바빠야 하며, 밝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완벽한 젊음인 것처럼 그려낸다. 힘든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하며, 봉사활동 두어 개와 학내 활동 한 가지 정도, 어학연수와 인턴은 필수이다. ‘책 읽을 시간조차 없다.’라고 말해지는 우리 시절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갖지도 못한 채 보내고 있다. 아니,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갖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철학과 사유가 무엇인지를 쌓아가는 것보다 스펙 나열이 더욱 중요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생각의 정리란 사치라고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푸른 날, 푸른 나뭇잎에 서리는 바람에 두근거리고 푸름을 벗어 빨갛게 변해가는 단풍잎을 보며 가끔은 괴로워하고 가끔은 공허함을 얻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지붕을 보며 찬란함을 느끼는 그 순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짙은 생각이 묻어있는 책의 어느 구절을 읽으며 내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그 삶의 길을 구축해 나가는 것. 거기엔 그 어디서도 강요받지 않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놓여있다. ‘무릇 젊음이란 이래야 한다’는 말은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젊음을 고민하고 내 인생을 이끌어갈 청춘을 위하여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013년도 반이 지나 어느덧 6월, 여름이다. 나무가 파랗게 차오르고 장마가 찾아올 것이다. 한차례 비가 퍼붓겠지만, 나무의 젊음과 여름의 생기는 여전할 것이다. 누구도 나무한테 이겨냄을 강요하지 않고 감히 강요할 수도 없다. 그저 우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돌본 나무는 시간과 함께 장마를 지나 보낸다. 누구도 청춘에게 젊음을 무기로 아픔을 강요할 순 없다. 흔들리거나 땅을 박차고 일어나길 강요할 수도 없다. ‘청춘다운 삶’이라는 포장으로 늘 생동감 있길, 늘 바쁘길, 늘 대외적인 무엇으로 꽉 차있길 말해선 안 된다. 그저 우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하길 응원해야 한다. 장마를 이겨낸 나무처럼 젊은 날의 고민을 시간과 함께 더 큰 성숙함으로 더 큰 사유로 이겨내길 응원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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