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예상치 못한 재앙이 찾아왔다. 물론 처음 아이디어는 깜찍했다. 나이 들면서 점점 학생들 이름 외우기가 힘들어져 아이패드로 첫 시간에 얼굴 사진을 찍어두면 손쉽게 이름을 외울 수 있으리라는 나름 기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학생들은 사직 찍기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어떻게 맨 얼굴에 사진을 찍는 폭거를 저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긴 봄 햇살에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분들은 어느 나라에서 온 분들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도 학생들의 항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각자 얼굴 사진을 다음 시간에 제출하게 하면 되겠다!

  하지만 한번 꼬인 일은 풀려고 할수록 꼬이는 법. 학생들은 다음 시간부터 사진을 제출하기 시작했는데, 볼수록 가관인 사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짱 각도는 애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진, 심지어 우산을 쓴 사진도 있었다. 백미는 아이스크림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사진이었는데, 이건 거의 아이스크림 광고 수준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영상미를 자랑했다. 결국 사진을 보고 얼굴을 외우겠다던 나의 순진한 발상은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매트릭스 속에 갇혀 끝없는 미로를 맴도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상관리이론을 어렵게 들이대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알다시피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글쓰기의 기본은 자랑질이다. 솔로들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남친, 여친과의 다정한 해외여행 사진은 단골 아이템이다. 어찌 그리 행복하고 완벽한지,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사는 게 죄스러워질 때도 있다. 감동적인 명언, 디자이너 패션, 북유럽풍 집, 시크한 아기 사진이 온통 인터넷을 장식한다. 

  사실 이런 자기 꾸미기는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유명인사들이 말하는 “과거의 나는” 류의 자랑질은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과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세속적인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은 권력에 대한 욕심, 꿈과 성취에 대한 욕망이 더 끈질기고 집요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성공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콤플렉스를 미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권리가 그들에게 과연 정당하게 주어졌을까?
 
  요즘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 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번 씩 저 사람들은 진짜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 중에 제일 강도가 심한 것은 언론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다 자살한 사람도 있고, 방송에서 정직을 이야기하다 표절한 사람도 있다. 콤플렉스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항변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자신의 성공담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다. 언론에 비친 성공담은 결국 콤플렉스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언론의 부추김까지 더해져서 자신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려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조해리의 창’에 따른다면, 자신을 감추는 것이 경쟁력이 아니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결국 경쟁력이다. 현대 사회에서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은 모르는 영역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최근에 일어난 포스코 왕상무 승무원 폭행 사건이나 이름도 들기 싫은 윤모 청와대 대변인 성희롱 사건을 보아도 처음 한 거짓말은 얼마 되지 않아 들통 나고 만다. 한 사람을 속이거나 모두를 잠깐은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곤란한 일에 직면하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면서 그 일을 손쉽게 모면하려는 심리가 지배적인 상태가 된다.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약점과 콤플렉스가 있다면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이 모든 면에서 명료하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말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쉽고, 쓸 데 없는 곳에 신경 쓸 일도 줄어든다. 인터넷 글쓰기도 자신의 장점만을 부각해서 만인의 경쟁심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쓰기로 사람들의 공감을 획득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다른 사람을 쫄게 만드는 성공하신 분들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용기, 자랑질보다는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그 담대한 용기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