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주 문화유적답사를 진행했다. 홍연주 강사가 참가자들에게 용미리 석불 입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생활협동조합(생협)이 문화유적답사(답사)를 4일 오전8시30분~오후6시 경기도 파주시에서 진행했다. 생협은 본교 구성원의 역사의식 제고를 돕기 위해 매년 봄 문화유적답사를 진행한다. 답사에 교직원과 본교생 약 25명이 참가했으며, 홍연주 강사(사학과)가 답사 진행을 맡았다.

  본교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파주시는 구석기 유적지부터 통일공원과 판문점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를 주제로 한 이번 답사 코스는 보광사, 용미리 석불입상, 율곡선생 유적지와 황희 선생 유적지 등으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용미리 석불 입상(용미리 석불)이다. 보물 제93호로 지정된 용미리 석불은 2미터가 넘는 천연 암벽을 따라 조각돼 있다. 한 학생이 용미리 석불 가슴 부분에 있는 반점의 의미를 묻자 홍 강사는 용미리 석불이 지닌 슬픈 역사를 설명했다.

  “여러분 용미리 석불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자국은 바로 6·25 전쟁의 총탄 자국이에요. 우리나라 유적지 대부분이 6·25 전쟁 때 소실됐다는 말 들어보셨죠?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역사입니다.”

  답사 참가자들은 율곡선생 유적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율곡선생 유적지에는 그를 모시는 자운서원과 이이, 신사임당의 무덤 등이 있다. 흔히 이이를 생각하면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지만, 그는 강릉에서 어린 시절 잠시 생활했을 뿐이다. 이이의 본래 고향은 파주 율곡리 일대로, 율곡선생의 호(號)는 고향에서 따온 것이다.

  김소진(사학·11)씨는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묘소가 함께 보존돼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조선시대 사액서원으로 지정됐던 자운서원까지 살펴볼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답사 마지막 코스는 황희선생의 묘역(황희 묘)이었다. 황희 묘는 이이 묘와 크기와 형식에서 차이난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황희 묘는 묘의 아래 부분을 화강암으로 받치고, 석상 4개가 봉분 앞에 있다. 황희 묘는 그 지름만도 약 1.5미터를 넘는다. 반면, 조선 중기 무렵 조성된 이이 묘는 그 지름이 약 1미터 내외로 황희 묘보다 작고 무덤 앞에 세우는 석상 크기 역시 황희 묘의 3분의2 수준이다.
이처럼 홍 강사는 같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무덤이라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무덤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희 묘는 이이의 무덤과 눈에 띄는 크기 차이가 나죠? 조선의 국가 기반이 마련된 성종 이후에 왕의 무덤과 신하의 무덤 크기를 경국대전을 통해 법으로 제한했기 때문이에요.”

  이날 답사에 참가한 박소연(국제·11)씨는 “교과서로만 접하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강사님의 설명도 곁들여져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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