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gers University,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


  공부가 잘 안 되던 꽃 피는 중간고사 기간의 어느 날, 나는 무작정 두꺼운 전공 교재와 책상에 높이 쌓여있는 프린트 더미를 내려놓고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작년 가을, 미국 동부에 위치한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에서 생활하며 찍었던 삼 천 여장의 사진이 나를 맞이했다. 참 신기했다. 진작 교환생활을 마치고 귀국한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이미 내 마음 가운데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다소 충동적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면 교환학생도 해봐야하지 않겠니?’하시던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에 왠지 모를 자극을 받아 8월의 막바지에 부랴부랴 토플과 면접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진작 출국하기 직전까지도 그리 설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대2병’의 무기력감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무엇을 이루고 와야 된다는 부담을 느껴서인지, 그렇게 나는 주변의 기대와 격려를 받으면서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무덤덤하게 출국을 준비하였다.

  이러한 슬럼프 상태의 나를 깨우듯, Rutgers는 눈부신 첫인상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건물과 소음,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뉴욕과는 달리, 탁 트인 파아란 하늘과 거대한 뭉게구름,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New Brunswick 캠퍼스는 나를 매번 설레게 했다. 부득이하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주말이면 나는 일찍 일어나 알렉산더 도서관까지 마냥 걷곤 했는데, 이따금 가는 길에 서 있는 몇 백 년은 됨 직한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뉴브런즈윅 기차역의 카페의 창가자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나는 그동안 지쳐있던 내 심신을 조금씩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에서의 생활 중 나에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창작(Creative Writing)수업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문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어서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까닭에 최종 확정이 되기 전까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전전긍긍해 했던 것 같다. 학기 초반에는 자유로운 토론식의 수업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점차 영어도 익숙해지면서 어느덧 손을 들고 의견을 발표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는 내가 썼던 단편 소설이 대다수의 학생들에게서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 그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질 듯이 기뻤다. 영어 문법도 부정확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의 작품을 미국 학생들이 이해해주고 인정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인데, 칭찬을 아끼지 않고 복사본을 부탁하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혼자 감동을 받고 펑펑 울기까지 했다. 비록 지금 나는 영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혹시 아는가, 내가 먼 미래에 무엇을 하게 될 지를?

  어떤 이들은 한 학기의 교환 생활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익히고 여러 지역을 두루두루 여행하기 위해서 한 학기가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지냈던 그 4개월 동안,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배웠기에 후회는 없다. 물론 타지에 살면서 정말 힘들었을 때도 많았고, 베개를 눈물로 적실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를 통해 나는 일 년 전의 나에 비해 훨씬 더 강해지고 내적으로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Rutgers 안에서 미국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기도 하고 뉴저지를 벗어나 뉴욕으로, 워싱턴으로 혼자 훌쩍 떠나기도 하며 찾았다.

  그간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 자신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