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약한 곳에 빈곤·폭력은 현재도 존재 거리를 좁히고 바라봐야


  여성,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
 
이 구호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철 지난 소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혹은 1900년대쯤 유행했던 구호로 짐작했을 수도 있다.
 
   지난 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제29회 한국여성대회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올해 대회는 ‘2013 여성,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를 해결해야 할 여성 문제로 제시했다. 이 대회에 참석한 여성 인사들은 여성선언을 통해 빈곤과 폭력, 소외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하게 된 계기인 여성 노동자의 시위는 올해로 105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의 여성 정책도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사회 각계에서 양성 평등을 실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는 이미 과거를 지나쳐 미래와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의 선언들이 무색해질 정도다.

  아마 저 구호 앞에 ‘2013’이 붙지 않았더라면 필자를 비롯한 많은 독자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2013’, ‘빈곤과 폭력’은 우리 인식에 그만큼 큰 간극을 두고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빈곤과 폭력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에서 그에 가해지는 작은 압박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탈북자 수는 2002년 약 1천여 명에서 작년 약 2만4천명으로 늘었다. 이 중 여성의 비율은 꾸준히 높아져 탈북자 10명 중 7명에 달했다. 북한 여성은 공장이나 작업장 등 일터에 소속돼 있으나 그곳을 벗어날 경우 그 책임감 정도가 남성보다 덜하다.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느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북한 여성들의 탈북동기와 생활실태(문숙재·김지희·이명근, 2000)’ 연구에 따르면 탈북 여성의 주된 탈북 동기는 ‘배가 고파 먹고 살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로,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절실한 이유로 국경을 넘는 북한 여성에게는 인신매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위의 연구도 국경을 넘어 가정을 꾸리고 정착한 여성 중 3명은 인신매매 업자에게 붙잡혀 팔린 경우라고 밝혔다.

  빈곤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북한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UN은 착취를 위해 금전을 제공하는 인신의 모집, 인수 등을 인신매매로 정의한다. 이에 따라 외국에선 성매매를 인신매매의 하나로 본다. 우리나라에는 약 100만명의 성매매 여성이 있다. 성매매 여성의 대부분은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성매매를 시작해 사회와 격리된다. 성매매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업주에게 있다.

  인신매매, 곧 신체에 대한 폭력은 다시 빈곤을 부른다. 이는 좀처럼 풀기 어려운 족쇄처럼 삶을 억압한다. 어느 사회에나 갈등과 반목이 존재하는 바, 이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온 빈곤과 폭력에 우리가 어느새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칫하면 현실과의 괴리만을 느끼고 지나쳐 버렸을 올해 여성선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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