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의 가치를 지향해야”



  “무슨 일이든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잖아.”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7급 공무원’에서 여자주인공 서원이 남자주인공 길로를 향해 말한다. 서원은 길로에게 누가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 재미있어?’라고 묻는 사람은 삶에 가치를, ‘그거 해서 얼마 벌어?’라고 묻는 사람은 돈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개인의 환경, 경험, 학습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개인이 인생에서 어떤 것을 제1의 가치로 두느냐에 따라 비슷한 능력을 갖췄어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 가치를 앞세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직업이 그 예다. 누구도 선뜻 오지로 봉사를 떠나는 해비타트나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안정’은 마음이나 정신의 안정이 아닌 경제적 안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가 동네 인형가게에서 하늘색 칠이 된 태엽 로봇을 샀다. 책상에는 이미 로봇뿐만 아니라 모형 자동차인 다이캐스트, 동전을 채가는 고양이 저금통, RC 자동차 등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Kid)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어른(Adult)을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물질 가치는 삶의 가치와 동반되어야 하며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다. 키덜트에게 장난감이 의미 있는 이유는 물질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목적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고, 일상을 되돌아보는 등 삶의 가치를 위한 수단이 되면서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발현되는 것이다. 혹자는 키덜트가 장난감에 부여하는 가치를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의 과거 회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키덜트는 장난감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며 장난감이 곧 탈출구가 되고 동시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라는 것이다.

  물질을 넘어선 가치는 오랜 기간 동안 남는다. 처음에는 이질적인 취미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키덜트를 위한 장난감이 별도로 출시되고 전시회가 열리는 등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물질 지향적인 삶은 모든 가치를 담을 만큼 큰 그릇이 아니다. 물질 지향적인 삶을 살면 다른 가치를 지향했을 때보다 한계가 빨리 온다. 눈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막상 배부르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물질을 추구한 후 오는 포만감 역시 한순간이다.

  반면, 삶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면 물질가치를 지향하는 것보다 선택폭이 훨씬 넓어진다. 예를 들어 ‘즐겁게 사는 것’이 자신의 가치라고 했을 때 개인은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즐거움은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경제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다. 물질은 더 색다른 삶을 사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세상에는 사막의 모래알 말고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많다. 그 중 삶의 가치는 상상력 범위를 넘어 무한하게 뻗어 나갈 수 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이익을 좇기보다 장기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역사가 담겨있는 과거부터 현재, 앞으로 펼쳐질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소수가 지향하던 어린 시절의 향수, 일상탈출 등 삶의 가치가 물질을 넘어 끝내 ‘키덜트’라는 문화로 피어난 것처럼.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