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방해할 때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얼마 전 1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지체 1급의 장애인이 된 강원래씨의 신문 기사 칼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는 운전을 못 할 줄 알았는데 하반신 마비인 상태로도 오토바이나 승용차에 장애보조장치를 장착하고 운전도 하고 면허증도 딸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돼 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만난 면허시험장 직원이 “또 오토바이 타시려고요? 그렇게 되고도 정신 못 차렸어요?”라고 말하며, “또 사고 납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 때 오세요”라는 편견과 농담 섞인 대답을 했단다. 기사를 읽은 나도 충격이었는데 당사자인 강원래씨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그런데 운전면허 시험장 직원의 잘못으로만 몰아세울 것은 아니다. ‘장애’라는 단어를 ‘삶’, ‘미래’, ‘꿈’ 과 같은 희망적인 단어들과 반의어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3년 전부터 봉사 연주를 함께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경민씨는 뇌성마비 1급 피아니스트이다. 유년시절에는 몸이 뒤틀려 있어서 잘 걷지도 못했고 손도 주먹 쥔 상태에서 잘 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알게 된 이후, 피아노가 좋아 주먹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향해 운동도 더 열심히 했고 항상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정말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열 개의 손가락을 움직이며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세계 유일의 뇌성마비 피아니스트가 됐다.

이런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보니 정작 장애로 인한 고통보다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이 더 큰 장벽이었다고 한다. “신체가 불편하다고 해서 생각까지 불편한 것은 아니거든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냉철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코 끝이 찡해졌다. 그의 고뇌가 얼마나 심했을지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또, 강원래씨의 글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장애음악인들과 협연을 하는 연주회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혹시라도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과 태도가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사람들이 서로 외모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장애기 있기에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들을 자주 만나고 솔직한 대화들을 나누며 많은 시간을 공유한 뒤였다.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이 생긴 이유가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발달하기 전에 복지교육과 제도가 부재했던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다소 수동적인 시각들도 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 가슴과 머릿속의 잘못된 기준과 생각들이 바뀔 수 있도록 이제는 능동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보호시설이나 병원, 고아원, 노숙인 및 행려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등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우리 이웃들을 찾아가 만나고 그들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눈다면 본인의 시각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고 손 내밀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깨닫게 되며, 많은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안을 수 있는 포용력까지 생기기에 차마 ‘남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의 ‘봉사’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사실 부끄럽다. 편견과 선입견 없는 세상은 우리의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들의 삶 속으로,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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