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의 소통을 사회와의 소통으로

▲ 최형욱 기자 oogui@ewhain.net


“여러분, ‘여성의 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세요.”

정지영 교수(여성학과)의 ‘여성학’ 강의가 진행 중인 13일 오후12시30분 이화·포스코관 B153호. 정 교수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소극적’, ‘절제’, ‘숨겨야 할 것’이라는 단어들을 쏟아냈다. 이에 정 교수는 학생들이 제시한 단어를 조합해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정리했다. “여성은 성적으로 소극적이고, 성욕이 강하지 않고, 절제하며 숨겨야 하는 것이군요.”

 이처럼 그의 수업은 교수와의 문답을 토대로 학생이 스스로 주제에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들이 별도의 수업자료 없이 경험담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잘못된 관점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것이다.

“여성주의 성 연구자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위계화한다는 것에 대해 논의한 바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성녀이며, 순결한 처녀이고, 어머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죠. 그런데 그 평가의 기준과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요? 우리는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울까요?”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여성을 이분화하는 시선이 문제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예가 있을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제가 야한 옷을 입으면 누군가에 의해 타락한 여자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이런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인데, 성스러운 어머니는 아니고, 그 본인은 아이를 열심히 키우며 어머니로 살아도 사회적 시선은 타락한 사람처럼 보는 것 같아요”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정 교수는 “정말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미혼모에 대한 이런 시선은 모든 사회에서 똑같이 존재할까요? 만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아이를 낳은 사실만으로도 존중해주는 사회라면 어떨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그 경우 미혼모에 대한 인식도 다르고, 미혼모 자신의 자아정체성도 우리 사회와는 다를 것 같다고 대답을 이었다.  

 학생들이 언제나 바로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 교수는 학생의 답을 기다리고, 사례를 제시해 답과 관련된 힌트를 주기도 했다. 발언하고자 하는 학생의 목소리가 작은 경우 마이크를 건네주기 위해 학생들 사이를 뛰어 다녔다. 

 정 교수는 수업 시간에 미처 토론을 끝마치지 못한 부분은 사이버 캠퍼스 게시판을 통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도록 한다. 반드시 써야 한다는 규칙도 없고,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기에 오히려 활성화되어 있다.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시판은 역시 ‘익명게시판’이다.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에서 수업에 대한 솔직한 소감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익명으로 제시된다.

 정 교수의 시험 문제 중 하나는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출제된다. 학생의 질문이나 의견 중 논쟁이 된 것을 제시하고 여성학 이론을 활용하여 분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온 글을 꼼꼼히 읽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학기 초에 이를 공지하므로, 학생들은 사이버캠퍼스에서 서로의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한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묻고 답하게 된다.

 정 교수의 수업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팀프로젝트는 팀원 구성에서부터 팀의 주제 및 팀 과제 진행 형식까지 모두 학생들 스스로 정하도록 한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과제를 수행하므로 팀원들이 ‘절친’이 되는 경우도 많다. 최종 결과물뿐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고민한 흔적을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이른바 ‘무임승차’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팀별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연구한 내용을 영상, 연극 등의 참신한 형식을 이용해 수업시간과 사이버캠퍼스를 통해 발표한다. 팀프로젝트 결과도 흥미로운 것이 많다. 팀프로젝트 최종 결과물로 당초의 계획이 ‘실패’한 과정과 그 이유를 분석하여 제출한 팀도 있었다. 지난 학기 ‘뽀뽀뽀’ 팀은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키스신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호평을 받았다. 정 교수는 기억에 남는 팀으로 ‘남장을 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실험’을 한 팀, ‘하이힐 실험’을 진행한 팀 등을 꼽았다.

 “남장을 하고 홍대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촬영했는데, 키가 큰 학생이라 그런지 정말 남자 같았어요. 실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위해 혼자 택시를 탔는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다른 팀원에게 전화를 했대요. ‘나 택시 탔는데 왠지 무서워’, 그러자 팀원이 ‘뭐가, 너 지금 남자잖아!’라고 했다네요. 이 과정에서, 자신 스스로 여성이라는 인식에 의해 ‘구조화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발표 했어요.” 

 “일주일 간 남동생에게 하이힐을 신게 한 팀이 있었어요. 남동생을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촬영하면서 소감을 물은 것이죠. 학생들은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는 남동생을 보며, 여성들이 평소에 신던 하이힐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를 새삼 느꼈다고 했어요.”

 이 수업을 듣는 장영인(사학․09)씨는 “여대인 본교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경험적으로 습득하는 편인데, 이 수업은 그러한 경험을 이론적으로 학습하도록 도와준다”며 “수업 시간에 스스럼없이 기존의 성 인식을 비판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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