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물거품이 되고 만 인어공주’ 이야기를 한다. 여자가 ‘내가 네 마음에 들면 나는 신데렐라가 되냐”고 묻자 남자는 ’인어공주‘라고 대답한다. 자신에게 여자는 결혼할 여자와 데리고 놀 여자의 두 부류만 존재한다며 ’너는 그 두 부류 사이 어디쯤이니,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 달란 뜻’이란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렸을 때 읽고 잊어버린 인어공주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용궁에서 행복하게 잘 살던 인어공주의 불행은 육지의 왕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기 위해 목소리를 마녀에게 바친다.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목소리는 곧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중요한 기능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 즉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과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조율하여 합일점을 찾는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공주는 자신이 용궁의 공주이며 왕자의 목숨을 구해준 당사자이고 왕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왕자에게 알릴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며 동시에 자아의 반영이고 영혼의 상징이었다. 목소리의 대가로 얻은 그녀의 다리는 왕자의 시선은 끌 수 있었지만, 그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했다. 대화의 통로가 막힌 공주의 사랑이 왕자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없었을 테니까. 마녀가 탐낼 만큼 아름답기까지 한 목소리를 잃어버림으로써 공주는 자신이 지녔던 찬란한 빛을 잃게 된 것이다. 왕자에게 그런 공주는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인어공주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채지 못한 채 왕자는 자신을 구해줬다고 믿게 된 다른 사람과 별다른 갈등 없이 결혼해버리고 만다. 

인어공주의 불행은 분명 목소리 때문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없다고 의사소통이 정말 불가능할까 ? 찾으려고만 한다면, 말만큼 정교하지는 않겠지만, 표정이나 몸짓, 미소 등 왕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주가 목소리를 스스로 버렸다는 데에 있다. 목소리를 버린 순간 공주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버린 것이다. 왕자의 사랑을 얻고 싶다는 욕심에 목소리 즉 자아를 포기하면서 그녀는 겉모습만 지닌 인형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성취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사랑을 얻은 여주인공과 모든 것을 잃은 인어공주의 차이는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 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린 인어공주와 달리,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오죽하면 남주인공이 ‘그쪽이 추호도 인어공주가 될 생각 없으니, 내가 인어공주가 돼서 그 쪽 옆에 없는 듯이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주겠다‘라는 말까지 했을까 ? 

마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아마도 마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인어공주가 왕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마녀들은 욕망을 담보로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간다. 인어공주에게 있어서 왕자는 욕망의 대상이었고 목소리는 그녀의 자아 즉 영혼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마녀가 인간의 영혼을 강제로 빼앗아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녀는 인간이 원하는 것으로 인간을 유혹할 뿐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내어놓는다. 마녀와의 싸움은 욕망과의 싸움, 즉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에는 소중한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소중한 가치를 위해 영혼을 팔지는 않는다. 영혼을 파는 것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자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왕자를 사랑한 공주는, 적어도 소통과 교감이 필요한 인간사회에서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왕자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왕자를 얻을 수 있다는 욕심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을 버린 인어공주, 목소리를 버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자신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텐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는 살아있다고 해도 물거품과 다를 바 없다. 거꾸로 말하면 목소리에 ‘진정한 자아’가 담기지 않으면 그 목소리는 없는 것과 같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로 인식되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과연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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