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더위가 조금씩 약해지더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있고 새 학기와 함께 나의 시계는 더욱 빨라진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니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난다. 나와 내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맞춰진 일상의 시간표에 따라 기계처럼 살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없고 세상만 존재하는 것 같아 조금 허전해진 나는 좀 더 여유와 멋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 젊은 친구를 앞세워 유명하다는 가로수 길을 찾아가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젊고 멋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들어서 젊은이들의 감각도 익혀볼 겸 나름대로 기대를 잔뜩 하고 갔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 막상 그 거리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곳과 별다른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음식이나 음료가 대단히 훌륭했던 것도 아니고 명소라고 할 만큼 특별하거나 아름다운 정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구경을 하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오히려 그곳이 매우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표정 그리고 비슷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마네킹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 적어도 나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거리였었다. 그 뒤 이런 저런 일로 몇 번 더 그곳에 가볼 기회가 있었지만 내 느낌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 거리가 명소가 되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들은 ‘다르다’대신 ‘틀리다’를 사용한다. 이런 현상은 공적 장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TV 드라마 대사나 출연자들은 물론, 아나운서와 MC들도 이 두 어휘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다르다’와 ‘틀리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다르다’는 ‘서로 같지 않다’ 또는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지다’이며 ‘틀리다’는 ‘맞지 않고 어긋나다’이다. ‘나는 너와 틀려.’ ‘이건 그것하고 틀린 거야.’ 도대체 누가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 이 두 어휘가 이처럼 혼동되어 잘못 사용되다가 언젠가는 ‘다른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 건 그냥 언어학쟁이의 노파심일까 ?

  유학시절 프랑스 친구한테 아무 이유 없이 멋진 옷 한 벌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나에게 옷을 준 이유는 새로 샀는데 그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고나서 그 옷이 입기 싫어졌기 때문이란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니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없을 거라고. 조금 별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남과 다른 것을 선호한다.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멋과 개성을 찾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다른 것’은 ‘개성과 특별함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신선함과 새로움, 창조적인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특성이란 걸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셀 수 없이 늘어나는,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똑같은 모습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투박하고 때로는 엽기적으로까지 보이지만 그들만의 개성과 목소리를 지닌 싸이, 울라라세션, 버스커버스커 등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는 우리의 행동이 그것을 증명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다수의 대열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혹시 나약하고 어설픈 자존심 때문은 아닐까 ? 

  행복은 결코 상대적이지 않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사라진다. 한 줄서기를 하면 항상 일등과 꼴지가 생긴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대신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향기와 색깔을 찾는 것은 어떨까 ?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나야말로 진정한 명품인간이다. 어설픈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진정한 자존감’으로 나를 성장시키자. 그래서 명품을 걸치고 입는 대신 내가 명품이 되어보자. 이화인 모두가 행복한 가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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