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멀든 가깝든, 어떠한 이유에서든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대상을 만나게 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아름다움을 붙들고 소유하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소유의 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여행 내내 사진 찍는 행위에 도취되어 사진을 찍고 저장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과 아름다움을 최대한 붙잡아 두고 싶은 습관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예상치 못하게, 여행 도중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진을 찍을 도구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급한 대로 펜과 종이를 꺼내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뿌옇게 흐려지는 안개, 날아가는 새, 지나가는 기차소리를 그림으로 기록하며 마음속에 붙잡아 놓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낯선 여행자인 동시에 그곳의 역사를 기록하는 능동적인 주인이 된 것이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이 자동적으로 세상의 소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어왔던 신념은 허구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카메라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오늘 여행에서의 할 일을 다 했다는 안심과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우리는 사진 속에서 진정으로 보고자하는 본질을 본 다기보단 추억의 프레임만을 보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상의 변화에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된다. 테크놀로지는 아름다움을 쉽게 저장해줄지 모르지만, 그것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과정을 결코 내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방법으로 사진 대신 그림을 택하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림을 그릴 때에 관심 있는 것은 그리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그리지 않게 된다. 스케치 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알게 된다. 또한  왜 그것에 이끌리고 감동을 받는지를 깨닫게 되며 이런 감동은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한다. 눈앞에 놓인 것을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곧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갖게 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저 눈을 뜨고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세상의 작은 움직임을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 아름다움이 얼마나 오래 추억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그것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의도적으로 파악하려 노력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서인지 수백 장의 사진보다 감정이 들어간 그림 몇 장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 더 깊은 아련함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감성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인생의 여행자여, 스쳐지나가듯 사진 찍기 보다는 세상의 작은 움직임과 자연의 숨소리를 담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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