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품위 있게 살 권리가 있어요.”

한비야 초빙 교수의 ‘국제 구호학 입문’ 강연이 4일(수) 오후5시 LG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약300명의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홀을 메웠다. 이날 한 교수는 ‘구호, 재난은 무엇인가’와 ‘국제구호의 규범’을 주제로 강연했다.

‘구호’란 천재와 인재 혹은 복합적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최대한 빨리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체의 행동을 말한다. 그러나 국제 구호는 구호 단체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제 구호는 재난 발생지역의 정부나 지역사회가 재난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국제구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해 이뤄져요. 재난이 발생했다고 우리가 무조건 구호 활동을 하러 갈 수는 없어요.”

사람들이 ‘구호’라고 하면 흔히 긴급구호(재난 발생 시 해당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것)만을 떠올리는데 구호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 그는 구호의 단계를 병원에 빗대어 설명했다.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하며 위험에 대비하듯 구호에서도 쓰나미 대피 장소를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는 등 위험에 대비하는 단계가 있어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긴급구호는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해 수술하는 단계이고, 재건 및 복구 작업에 착수하는 활동은 수술이 끝난 환자를 회복실에 데려가는 단계로 볼 수 있죠.”

스크린에 난민들이 길게 행렬을 지어 언덕을 넘어가는 사진이 나타나자 한 교수는 “난민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했다. 학생들은 식량, 식수라고 답했다. 그는 이제까지 국제사회가 난민에게 식량과 식수를 우선 원조했지만 사실 난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보호와 안전’이라고 답했다.

국제구호를 할 때도 따라야 할 규범이 있다. 규범에는 법, 원칙, 행동강령, 기준, 윤리 등이 포함된다.
국제 구호 관련법은 국제인권법, 국제인도주의법, 난민법 세 가지로 나눠진다. 한 교수는 이 중 국제인권법을 언급하며 세계인권선언(1948) 제1조를 낭독했다.

“인권이란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에요. 유엔 가입국이라면 더욱 조약과 관습, 국제규칙을 통해 평화나 전시에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해요. 저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를 보는 순간 찌릿찌릿 했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말이죠.”

한 교수는 구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윤리 문제에 부딪힐 때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원칙을 지키자’는 의무론적 윤리와 ‘모로 가도 서울만 된다’는 결과론적 윤리로 나눠진다. 전자는 동기 및 방법을 선택할 때 원칙을 중시하는 반면 후자는 결과를 중시한다.

“한 마을에서 1천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예를 들어 보죠. 구호단체가 구호 활동을 하러 마을에 갔는데 무장한 반군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반군에게 식량·돈 등을 주며 타협을 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을 돕거나 반군과 타협하지 않고 후퇴하는 거예요. 원칙은 무장 괴한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지만 현장에 있는 구호 단체의 본부장이 어떤 윤리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요.” 

강연이 끝나고 한 교수는 참가자들이 종이에 써서 제출한 질문 중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여러분에게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거예요. 대신 여러분이 약자를 따뜻하게 보는 눈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고 국제구호를 한다는 것은 기본이 안 됐다는 얘기에요. 무엇보다도 국제구호를 돈 받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본인에게 너무 힘들어요. 지뢰를 밟고 발목이 날아가는 등 국제구호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에요.”

한 교수는 이 날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으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후 방탄조끼를 입고 이라크에서 구호활동을 했을 때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쇠덩이 방탄조끼 아래에는 콩알만 한 땀띠가 몸 전체에 나 있었어요. 밤에 잘 때 옆으로 누워서 자야했고 샤워를 할 때는 벌 천 마리가 몸을 쏘는 것 같이 아팠죠. 그래도 사진 속  제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일이 제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지금부터 무엇이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생각하면서 가지고 있는 날개를 활짝 펼치시기 바랍니다.”

이날 강연을 들은 이경원(특교·08)씨는 “특수교육과 학생으로서 사람의 인권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이라 그러지 못했다”며 “강연을 들으면서 인권과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정민(간호·12)씨는 “국제구호에 필요한 책과 구호 단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국제구호란 생각보다 체계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이때까지 국제 구호를 너무 낭만적으로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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