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과 함께 묻혀있는 전설의 도시, 엘도라도

 

세계장신구박물관은 콜롬비아 황금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이어 엘도라도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몇 안 돼는 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의 엘도라도 전시 코너에는 엘도라도를 상징하는 황금 유물 약30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를 구경하며 1980년대를 풍미했던 굼베이밴드댄스의 ‘엘도라도’ 노래를 떠올려본다. “엘도라도엔 황금과 꿈이 있어요.”

△엘도라도의 주인공, 황금 문명을 꽃피우다

1511년, 파나마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파나마 지협 남쪽으로 내려가면 황금으로 가득찬 왕국, 엘도라도(El Dorado)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엘도라도는 원래 ‘황금의 도시’가 아닌 ‘금가루를 칠한 사람(황금인간)’을 일컬었다. 당시 콜롬비아 보고타 주변에 살고 있던 치브차(Chibcha)족은 매년 추장의 몸에 금가루를 바른 후 뗏목에 황금 보물을 싣고 자신들이 모시던 구아타비타 호수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들은 황금 보물을 물속에 던지고 호수 물로 추장의 몸을 씻으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이 신비한 풍습을 전해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추장을 ‘황금인간’이라는 뜻의 엘도라도라고 불렀는데 후에 의미가 ‘황금도시’로 와전된 것이다.

세계장신구박물관 ‘엘도라도의 방’의 오른쪽 끝에는 치브차족의 이 풍습을 본떠 만든 모형 뗏목이 있다. 길이 19.5cm, 폭 10cm, 높이 10cm인 이 뗏목은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나무를 엮은 뗏목 중간에 왕이 목걸이, 귀걸이를 하고 있고 그 주변에는 왕보다 작게 표현된 8명의 신하가 서있다. 뗏목의 모서리 네 군데에는 머리 위에 뿔이 달렸고 등이 굽은데다 긴 꼬리를 가진 신화적 동물이 뗏목을 지키고 있다.

남아메리카에는 남미 인디오들이 살았던 지역 외의 다른 곳에서도 황금으로 만들어진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 그 중 황금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문명은 잉카 제국이다. 잉카 수도 쿠스코에 위치한 ‘태양 신전’은 벽 아래부터 천정 꼭대기까지 모두 황금 판으로 덮여 있었고 화원은 새부터 화초까지 모두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남미에 황금 유물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 광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금․석영 광맥, 페루와 칠레의 구리광상, 볼리비아의 주석․은 광상 등이 있다.

남미 인디오들의 황금 유물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현대인의 감탄을 자아낸다. 모든 조각상은 목에 걸린 구슬 목걸이부터 작은 귀걸이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엘도라도의 방’ 오른쪽 입구에 가까이 위치한 콜롬비아 시누 지방의 남자 제사장 조각상은 코에 코걸이 장식이 수염처럼 돌돌 말려있고, 턱수염에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양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고 팔목과 발목에는 줄로 감은 장신구를 차고 있다. 김윤정 부관장은 “현대 금속 공예가들은 현대 기계로도 다루기 힘든 금으로 남미 인디오들이 기원전 1000년에 정교한 조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며 “현대 공예가들은 전통적인 문양, 기법 등을 다시 배우며 이를 현대화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은 태양이다

‘엘도라도의 방’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금으로 만들어진 높이 약10cm의 사람·동물 모양의 펜던트 4개가 전시돼 있다. 콜롬비아 북부 타이로나(Tairona)족이 만든 이 사람·동물 모양 펜던트들의 특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으로 된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점이다.

한 펜던트는 신라의 금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코에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초승달 모양의 코걸이를 달고 있다. 목, 팔, 다리에는 동그란 구슬을 엮은 장신구가, 동그란 귀에는 작은 링 귀걸이까지 섬세하게 표현됐다. 이 펜던트처럼 고대 남미 인디오들은 금으로 된 많은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기를 좋아했다.  

고대 남미 인디오들은 황금을 숭배했는데 금을 태양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태양은 인디오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콜롬비아 치브차족의 설화에 의하면 세상이 암흑으로 덮여있을 때 소가모소 왕자와 그의 조카인 라미리키 왕자가 살고 있었다. 따분해진 두 왕자는 진흙과 갈대로 최초의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남녀에게 자신을 숭배하라고 말한 후 두 왕자는 하늘로 올라가 각각 해와 달이 돼 세상에 빛을 가져왔다.

위와 같은 이유로 황금 장신구는 높은 지위의 남미 인디오들에게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엘도라도의 방’에 전시된 펜던트 오른쪽으로는 밤톨만한 크기부터 사람 얼굴만한 금 코걸이 세 개가 전시돼 있다. 김윤정 부관장은 “금을 얇게 눌러서 만든 이 코걸이는 왕족만 착용할 수 있었고 크기가 클수록 더욱 귀한 신분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왕족이 걸을 때마다 코걸이가 태양의 빛을 반사해 번쩍번쩍했는데 이는 시각적 효과로 왕족을 더욱 신격화했다.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 외에도 코걸이는 몸속의 기가 콧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자물쇠 역할을 하기도 했다.

황금 장신구는 종교적 의식에도 자주 사용됐다. 남자 제사장 조각 옆에 전시돼 있는 콜롬비아 시누 지방의 여자 제사장 조각은 마찬가지로 목, 팔, 발에 금 장신구를 화려하게 착용하고 양손에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이 조각상은 지도자가 죽고 무덤에 같이 묻힌다. 신의 힘이 깃들어 있는 황금 조각상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켜주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다. 

△황금을 향한 욕망은 고대 문명의 파멸로 이어져

잉카나 마야 문명에 견줄 만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고대 남미 인디오와 주변의 고대 문명은  유럽인들의 탐욕 때문에 파멸됐다.

파나마에 진출한 스페인들 중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와 디에고 데 알마그로(Diego de Almagro)는 엘도라도를 찾아 1524년 배를 타고 남쪽으로 탐험을 시작해 잉카 제국을 발견했다. 피사로는 1532년 본국에서 페루 정복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돌아와 북방의 에콰도르 잉카와 남방의 쿠스코 잉카의 내란을 이용해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이후 잉카의 수도 쿠스코는 안데스 산지 정복의 거점이 됐고 스페인은 ‘엥코미엔다’라는 제도를 확립해 치브차족을 다스렸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1551년부터 1560년까지 남미에서 스페인에 조달된 금은 43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의 한 신전에서 말 42마리가 옮길 금을 약탈했고 쿠스코의 ‘태양의 신전’ 벽에서는 커다란 금고 뚜껑 크기의 황금 판 700장을 뜯어갔다고 한다. 이들은 치브차족의 황금 유물을 약탈해 녹여 스페인으로 옮기기도 했다. 고려대 송상기 교수(서어서문학과)는 “신성로마제국의 왕이 되고 싶었던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1세는 신대륙에서 조달된 금을 플랑드르 지역의 은행가들에게 전달하며 로비를 했다”며 “이와 함께 스페인이 종교전쟁에서 스위스 용병을 살 때 사용한 황금이 대거 이동되며 자본주의의 성장 및 근대성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남미 문명, 그들의 유산은 황금을 향한 유럽인들의 욕망으로 사라졌다. 유럽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엘도라도는 굼베이밴드댄스가 노래했듯이 “오직 당신의 마음속에서만 실현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땅속에서 과학이 숨쉰다」, 「라틴아메리카 지리·이전」, 「물건의 세계사」, 「사라진 황금 왕국 잉카 신화」, 「잉카-태양신의 후예들」, 「황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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