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만나는 박물관 산책(1)
세계 문화 만나는 박물관 산책(1)
  • 이경은 기자
  • 승인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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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을 쓴 아프리카, 인간의 본성을 담아내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빈곤, 기아, 쿠데타 등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최초의 인간이 탄생한 ‘인류의 요람’이라는 점에서 인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단서를 제시한다. 화정박물관 ‘아프리카 탈’ 전시를 통해 아프리카 부족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아프리카 미술이 현대 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

화정박물관은 3월15일 가회동의 탈 전문 박물관인 명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프리카 탈 중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탈 약90점을 선정해 전시했다. 김재한 학예부장은 “다양한 아프리카 탈에 표현된 문양의 의미와 탈이 사용되는 문화적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아프리카의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살펴 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얼굴에 덮어쓰는 영혼, 탈

‘아프리카의 탈’ 전시장에 들어서면 올빼미의 동그란 눈과 코뿔새의 코를 형상화한 콩고 민주 공화국 브와(Bwa)족의 탈을 볼 수 있다. 이 부족은 올빼미와 코뿔새를 신성시한다. 브와족은 탈을 쓰면 자연 정령의 힘을 받게 된다고 여겨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 정령의 기운을 받기 위해 이 탈을 썼다.

아프리카 부족은 지향하는 가치, 교훈, 욕망 등을 특정 동물이나 문양의 탈로 표현했다. 탈을 쓰면 그 상징성이 강화돼 부족 사회에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수, 성인식, 장례식 등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마다 탈을 새로 만들어 제례에 사용했다. 탈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 부족민 간의 조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성했던 말리 지역에는 도곤(Dogon)족이 왈루라는 탈을 쓰고 장례의식을 치른다. 머리에 뿔 네 개가 있는 이 탈은 영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죽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행한 의식에서 사용됐다. 이 의식은 12~13년마다 한 번 6~7주 정도 행해졌다.

진열된 서아프리카의 탈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얼굴에 지그재그 문양이 들어간 코트디부아르의 야우레(Yohure) 부족의 탈을 볼 수 있다. 이 탈은 사별 후에 부족에서 한 사람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균열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유(yu)라는 영혼을 표현한다. 김재한 학예부장은 “탈을 쓰고 의식을 통해 흐트러진 자연 질서를 바로잡고 죽은 사람의 가족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장례의식, 가족 위로 등 아프리카 부족마다 탈을 쓰고 치르는 의식은 다르지만, 그들은 사후의 삶이 있다고 믿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조상신에게 올리는 제례를 통해 후손의 안녕을 부탁한다. 중앙아프리카 구역에 전시된 탈 중 기다랗고 하얀 탈을 볼 수 있다. 이 탈은 조상신과 접신할 때 사용됐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북부의 요루바(Yoruba)족도 죽은 사람의 형상을 나타내는 가면을 쓰고 7일간 행렬을 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에 선조가 후손들을 찾아온다고 믿으며 행렬이 시작되기 전날 자정에는 가정마다 조령(祖靈)에 하고 싶은 말을 중얼대며 기도한다. 「아프리카 문화의 새로운 이해」에 따르면 아프리카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조상의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난다고 믿는다. 그들은 조상을 ‘살아있는 죽은 사람(Living-dead)’이라고 부른다.

△탈은 권력이다

아프리카 부족민들의 탈은 영혼의 힘을 빌리는 제례 의식의 도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소유물로 사용되기도 한다. 박물관 초입에서 쭉 걷다보면 나무에 실제 원숭이의 털과 가죽을 붙인 원숭이 가면이 있다. 이는 다크웰레 부족의 통치자들이 쓰고 다닌 곤(gon)이라는 탈인데 권위와 힘을 상징했다.

곤이 위치한 벽 하나를 따라 돌면 기존의 아프리카 탈과는 달리 코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털이 무성한 탈이 전시돼 있다. 이는 콩고 지역의 한 부족이 본 서양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탈로 족장의 부와 힘을 상징한다. 아프리카는 15세기부터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통해 새로운 물건을 받아들이고 부를 축적했다. 김재한 학예부장은 “무역을 통해 들어온 재물은 먼저 족장에게 전달됐고 교역된 물품을 처음 접하면서 갖게 되는 부와 권력이 탈로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이런 탈의 특징은 탈을 만드는 과정을 비밀에 부쳐 신성시했다. 탈을 제작하는 사람은 주로 비밀결사의 일원으로 비밀리에 탈을 제작하고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에는 이와 같은 비밀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말리의 도곤족 사회에서는 남자아이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아베(Ave)’라는 가면 비밀결사 그룹에 가입하게 된다. 아베에서 가면을 제작하고, 춤을 추는 것까지 일체의 행위는 그룹의 일원이 아닌 사람,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다. 절차가 여성과 아이들에게 알려지면 부정을 탄다는 사회의 통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트디브와르의 세누포(Senufo)족도 소년, 청년, 기혼 남성이 연령계층별로 포로(Poro)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가면을 쓰고 가무를 연출하는 종교의식을 시행한다.

△야수주의, 입체주의의 시작은 아프리카 미술

아프리카 탈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세계 곳곳의 유명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20세기 초 기술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보며 원시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다. 이들은 19세기 전부터 유럽의 탐험가들이 가지고 온 아프리카 조각, 가면을 보고 강한 원색과 거친 화필에 매료됐다. 앙리 마티스, 조르주 루오, 앙드레 드랭 등이 어울리며 야수파가 탄생했다.

마티스는 1906년부터 몇 번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에서 아라베스크 문양(덩굴 식물의 부드러운 곡선과 기하학적 무늬가 조화를 이룬 패턴)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평면적이고 본연의 색을 표출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입체감이 없는 실내가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붉은빛의 커다란 실내」(1948)라는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피카소도 우연히 접한 아프리카 조각에 영감을 얻어 추상적이고 힘찬 선을 표현하며 입체주의를 주도하게 된다. 그는 1907년 가을 아프리카 조각을 본 후 <아비뇽의 아가씨>(1907)를 완성했다. 당시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아름다운 육체를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미술 공동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에 감명받은 화가 브라크와 함께 피카소는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열었다.

한국외대 김윤진 교수(아프리카학부)는 “인류가 최초로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은 아프리카였고 이후 세계로 뻗어 나갔기 때문에 누구나 아프리카의 기본 가치인 자연과의 조화, 공생에 대한 본원적인 가치 추구의 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대 미술가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강한 이끌림은 느낀 것도 그러한 본능에 끌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아프리카 문화의 새로운 이해」, 「아프리카의 부족과 문화」,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 「피카소」


화정박물관
평창동에 위치한 화정박물관은 한국, 티베트,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동아시아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999년 한광호 박사가 박물관을 설립한 이후 티베트의 미술, 중국미술소장품전, 탕카의 세계-티베트 불교 미술 등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대역 6번 출구 근처 153번을 타고 화정박물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박물관 개관시간은 오전10시~오후6시 연중무휴이며 ‘아프리카 탈’ 전시 입장료는 5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