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를 넘어 봄이 돌아오고 있다. 12학번 새내기들이 이화에 들어오고, 나도 어느새 정든내기가 되었다. 작년 나의 봄은 어떠했는지 생각하며, 여러분의 봄은 어떠했는지 묻고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 그 봄날의 미팅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묻고 싶다.

  작년 2월, 합격 통지서를 막 받아든 나에게 밀려온 것은 분명 해방감만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특히 ‘여자 대학’라는 공간은 어떨지 불안하기도 했다.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과 엠티, 개강 파티, 신입생 세미나 등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곳에서 나를 맞아준 대학 문화는 바로 미팅이었다. 그 어떤 자리에서도 미팅은 화려하게 등장했다. 선배가 주는 충고에도, 교수님과의 대화 시간에도 미팅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뒤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적당히 게임이 몇 회 돌면, 자연스럽게 미팅 주선 약속이 오갔다. 선후배간, 동기간에 미팅을 서로 주선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미팅이라는 것은, 연애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이제 성인으로서 떳떳하게 연애가 가능한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표지 같았다. 여대에 입학한 새내기가 남자를 구경할 수 있는 창구였다. ‘여대에 진학해도 인맥이 좁지는 않다. 이화여대에는 타 학교보다 많은 미팅이 들어오기 때문에 본인의 노력에 따라 넓은 인맥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설명을 달고, 여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해결책처럼 소개되기도 했다. 미팅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나는 미팅 문화에서 소외된 레즈비언이었다.

  성소수자가 굳이 남녀를 짝짓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미팅을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새내기가 미팅이라는 뜨거운 이슈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 사람을 사귀기 시작하는 새내기 시절에, 모두의 가장 공통된 주제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소외로 이어졌다. 미팅은 외부의 인맥과 상관없이 학내의 인맥을 쌓는 데도 중요한 위치였던 것이다.

  미팅은 대학에 갓 들어와 맛보는 달콤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레즈비언 새내기로서 내가 가장 먼저 부딪친, 이성애중심주의적인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화 장벽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머릿수를 꼭 맞춰서 하는 미팅은 남녀를 짝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레즈비언 정체성이 부정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사회는 나를 암묵적으로 이성애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미팅에 참여하는 순간 나는 ‘암묵적 이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사람’이 되었다. 자유, 친분, 인맥 등등 어떤 가치가 덧붙여지더라도, 미팅의 제1목적은 (이성애) 연애 상대를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당신에게 미팅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내게 미팅은,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하여 이성애를 가장해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내게 그랬듯, 이성애 연애 상대를 구하는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 미팅이 대학 새내기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은 많은 성소수자 학우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다양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대안 문화가 등장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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