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신문에서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용 취미’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도토리 키 재기인 서류전형에서 취업 3종 스펙(취업을 위해 쌓은 이력이나 경력으로 학점, 토익점수, 해외연수 경력을 뜻함)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이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뚫는 것보다 힘드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 취미까지 ‘만들어야’하다니. 취업을 앞두고 있는 필자에게는 왠지 찌릿하게 다가온다. 이젠 순수한 취미 생활도 사치가 되는 것일까. 기사에서 소개된 이들은 골프, 복싱, 판소리, 마술 등을 배우고, 윈드서핑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모두 직장을 얻기 위해 한 행동들이다. ‘영화감상’, ‘독서’ 등의 평범한 취미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면접관들에게 입증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 학생은 기사를 통해 인터넷에서 ‘면접관들이 말하는 좋은 취미 목록’이 돌아다닌다고도 했다. 취미가 스펙이 되는 순간이다. 이젠 취업 3종 스펙이 아니라, 취업 4종 스펙으로 부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그래서 직장을 얻었다면 다행이다. 진심으로 즐기게 됐다면 더 다행이다. 하지만 마술을 가르치는 강사가 기사에서 “이력서 한 줄 더 쓰려고 오는 학생들은 몇 가지 기술만 배워갈 뿐이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이들이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취미를 속성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위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본지 이번 호에 보도된 야구에 빠진 이화인들이다. 그들에게 야구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족에 의해 혹은 어릴 적 낮에 하는 TV 프로그램이 스포츠 중계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스포츠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기 시작한 스포츠지만 천천히 야구선수가, 종목 자체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어 갔다.

야구는 그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최고의 취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의 승패 여부에 따라 기분도 바뀌고, 학교 성적에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야구 관련 뉴스를 확인하고, 학교에서도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야구 관련 얘기를 나눈다. 경기를 보다가도 모르는 규칙이 나오면 공부하고, 구단 커뮤니티의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절대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만들어낸’ 취미라면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수는 없다. 한 취재원은 9월 김성근 전 SK와이번스 감독이 경질됐을 때 진심으로 상처를 받아 야구에 대한 열정을 정리하겠노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마지막으로 간 야구장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더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들이 야구를 ‘그냥’ 좋아한 것이라면,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만든 이력이었다면, 그렇게 진심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짧게는 5년 길게는 약15년을 야구와 함께 해온 인생이다. 자신의 생활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취미생활이라면 그들에게 야구는 ‘나 자신을 설명해줄 수 있는 취미’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라면 당당하게 자기소개서 취미 란에 ‘야구 관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필자에게 ‘당장 취업이 코앞인데, 배부른 소리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당장의 스펙 쌓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고, 취미라는 건 생각할 여유도 없는데 어떻게 이들처럼 한 가지 일에 푹 빠져 있을 수 있으랴.

사실 필자에게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은 없다. 2학년 때 취미로 통기타 연주를 배워보겠다고 동호회, 인터넷 등을 쏘다녔었지만 약1년 반이 지난 지금 필자의 기타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필자의 성격이 취미 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수 년 간 야구에 열정을 바쳤던 이화인들처럼 필자도 통기타에 시간을 쏟았더라면, 곡 하나 쯤이야 거뜬하게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취업하려면 지금이라도 기타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순수한 취미 생활도 스펙이 되어가는 지금, 대학생들에게 ‘야구에 빠진 이화인들’처럼 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행복한 일 인 것 같다. 필자를 비롯한 이화인들이 취업을 목적으로 한 취미가 아닌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야구에 빠진 이화인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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