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30년, 여자 관중 40%시대

올해로 30돌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의 누적관객이 13일(화) 기준 6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열리는 532개 경기 중 466 경기만의 일이다. 프로야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관객석을 메우는 여자 관중들도 많아졌다. 작년 5월~6월(6개 경기 기준 전수조사) SK와이번스(SK) 홈구장을 찾은 관객 8만3천631명 가운데 여성이 40.9%(3만4천174명)였다. 작년 롯데자이언츠(롯데) 홈구장인 사직구장을 방문한 회원 40만6천450명 중 여자 관객이 14만7천372명(36,3%)였다. 과거 ‘아저씨들의 스포츠’로 불리던 야구가 점차 여성, 가족들의 스포츠로 입지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야구팬 이화인 4명을 만나 그들이 야구에 쏟는 열정을 들어봤다.


△아버지 손잡고 따라간 야구장, 대학 진학 후 최고의 취미가 되다

최윤서(사생·08)씨는 1995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야구장에 처음 발을 디뎠다. 롯데 팬인 최씨의 아버지가 딸이 ‘이기는 팀’을 응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를 LG트윈스(LG)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LG는 1994년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 등 ‘신바람 야구’를 하며 한창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경기를 보러 갔던 어느 날 당시 신인이었던 김재현 선수가 전광판을 때리는 홈런을 치는 것을 본 기억이나요. 멋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보던 야구였는데 그 때부터 더 열심히 봤어요.”

최씨는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야구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엘지가 올해도 ‘DTD(Down Team is Down,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이론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응원하는 LG는 2002년 코리안시리즈 때 준우승한 이후 포스트 시즌(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올해 정규시즌에도 초반에는 1, 2위를 했었지만 9월22일 기준 5위에 머물고 있다.

“계속 져서 ‘아, 이제 그만 좋아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또 갑자기 이기기 시작해요. 자꾸 이겨서 또 경기를 챙겨보면 지죠. 애타게 만들어서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게 LG야구인 것 같아요.”

최씨는 작년 SK 소속의 ‘캐넌 히터’ 김재현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잠실, 목동, 인천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경기를 관람했다. LG의 경기가 지방에서 열려도 SK 경기가 잠실, 목동, 인천 3구장 중 1곳에서 열리면 보러가는 식이었다. 김재현 선수는 최씨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간 경기에서 전광판을 때리는 홈런을 치는 것을 보고 팬이 됐던 바로 그 선수다.

“김재현 선수가 은퇴하기 전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못보면 한이 될 것 같아서 시즌권 사는 것보다 야구장에 더 많이 간 것 같아요. 하지만 갈 때마다 역전 만루를 치는 등 경기력이 좋아서 뿌듯했어요.”


△선수 은퇴식 보기 위해 당일치기 대구원정, 경기 없는 월요일이 심심하다

삼성라이온즈(삼성) 팬인 김재은(사생·08)씨는 친구와 함께 작년 9월 양준혁 선수의 은퇴식을 관람하기 위해 당일치기로 대구시민운동야구장(대구광역시 북구, 삼성 홈구장)에 다녀왔다. 양준혁 선수는 통산 최다타석, 통산안타기록 등 많은 기록을 세워 기록의 신, 양신(神)이라고 불리던 선수다. 일요일에 열린 경기를 본 그는 월요일 새벽2시쯤 서울에 있는 집에 도착했고 그 날 2교시 수업에 출석했다.

그에게 야구는 숨은 매력이 너무나도 많은 스포츠다. 매 경기 9명의 선수가 보여주는 조직력,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이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 등이 그가 설명하는 야구의 매력이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봐야 해요. 팀워크도 중요하죠. 스타 플레이어가 잘 해서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9명의 선수가 모두 힘을 보태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죠.”

자신이 소속한 팀의 어떤 선수가 MVP, 홈런왕, 신인왕, 골든글러브 등의 상을 탈지 기다리게 되는 것도 야구의 매력 중 하나다.

“지금 삼성 최형우 선수가 롯데 이대호 선수와 홈런왕 1, 2위를 다투고 있어요. 세계 최연소 200세이브를 기록한 삼성 오승환 선수도 있어요. 기아타이거즈 윤석민 선수, 오승환, 최형우 선수, 이대호 선수 중 누가 MVP를 받을지도 궁금해요. 우리 팀의 선수들이 순위에 많이 올라가 있어서 ‘누가 상을탈지’가 큰 관심거리죠.”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은 뭔가 심심하다’는 그는 팀의 성적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코리안 시리즈에서 준우승한 삼성이 올 시즌 초반 4~5위를 달리면서 그의 기분 역시 별로였다. 자신의팀 성적이 좋지 않는데, 팀 성적이 좋은 구단을 응원하는 친구가 자랑하면 가끔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팀이 1위를 달리고 있는 요즘, 김씨의 생활도 매우 활기차다. 21일(목)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김씨는 넷북으로 삼성 대 두산베어스(두산)의 경기 중계를 보고 있었다.
“올해 초 팀 성적이 안 좋았을 때, 1위팀 응원하는 친구가 야구 얘기하면 ‘그깟공놀이가 뭐’라고 말하곤 했죠. 속상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또 이기나? 이번 경기 져도 1위인데 뭐’라고 생각하죠. 팀이2006년 우승 이후로 처음 우승의 길을 달리고 있어서, 삼성 팬으로서 요즘 매우 행복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리더 ‘포수’에 매료되다

SK 팬인 김연하(사생·08)씨는 박경완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포수라는 포지션 자체와 박경완 선수의 경기 운영 능력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박 선수는 경기를 리드하는 포수임과 동시에 국내 유일의 4연 타석 홈런(한 타자가 네 타석 연속으로 홈런을 치는 일) 기록을 갖고 있는 능력 있는 타자이기도 하다.

“저는 그라운드 안에서의 포수는 전투를 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야구 경기는 심판의 ‘Play Ball’ 선언 후 포수가 투수에게 사인을 내는 것으로 시작하죠. 포수가 보낸 사인을 읽고서야 투수가 첫 공을 던지니까요.”

김씨가 야구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어릴적 가족들과 함께 도원야구장(인천시 도원동)에서 현대유니콘스를 응원하면서부터다. 중·고등학교 때는 올림픽이나 WBC(World Baseball Classic)등의 국가대항전만 챙겨봤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는 거의 매일 저녁을 야구 경기와 함께했다. 야구 경기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리며 각 구단은 한 달에 약25번 정도의 경기를 치른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경우도 있었고, 경기를 볼 사정이 안 될 경우 스코어는 꼭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약속은 대체로 경기를 볼 수 있는 호프집에서 잡았다.

“주말에 문학구장(인천광역시 남구, SK 홈구장)에서 경기가 있으면 항상 갔죠. 문학구장 20번~21번 출구 사이, 아래에서 4번째 줄 좌석이 제가 찾은 명당자리에요.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지 않는 한 모든 경기를 챙겨보려고 했어요. 우리 팀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엔 우리와 순위 경쟁하는 다른 구단 경기를 보곤 했죠.”

김씨는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측하면서 보는 '생각하는 야구'가 경기의 재미를 더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볼카운트(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와 볼의 수)를 보고 ‘투수가 다음번엔 어떤 공을 던질까’, ‘타자는 어떤 공을 노릴까’를 예측하는 것이다.

“볼카운트를 보고, ‘타자가 이번에는 스윙을 참을 것 같다’ 싶으면 투수가 몸 안쪽으로 공을 찔러 허점을 노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거죠. 예상이 맞으면 정말 재밌어요.”

최근 그는 김성근 전 SK 감독이 경질된 사건으로 인해 구단에 대한 실망이 커 잠시 야구 관람을 접은 상태다. 하지만 그는 야구에 한창 빠져있던 작년을 회상하며, 팀 성적이 자신의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봄에 야구가 시작되면 매일 오후6시30분이 되기 만을 기다려요. 그때 야구가 한창이니까 즐기는 거죠. 아무래도 야구에 집중을 많이 하니까 가을학기보다는 봄 학기 성적이 낮은 편이에요. 가을 야구는 보통 10월에 끝나니까 기말 때 성적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거든요.”


△야구를 즐기고 싶다면 경기장에 직접 가서 응원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삼성 팬인 홍서호(중문·08)씨 역시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족의 영향을 받아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가족은 롯데 팬이지만 홍씨 혼자 삼성 팬이다. 부산이 고향인 어머니는 연고도 없는데 왜 삼성을 좋아하냐고 묻지만, 그는 왜인지 근성 있는 박한이 선수와 삼성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작년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 대 두산의 경기에서 박한이 선수가 역전 결승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작년 플레이오프 때 두산과 엎치락뒤치락 승부하는 과정에서 박한이 선수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웅한이’로 인해 가슴이 뜨 거워졌죠. 작년 코리안 시리즈 때 SK에 패하는 모습을 보고 마 음이 아프긴 했지만, 좋아하는 팀이기에 이번 시즌에도 열심히 응원하고있어요.”

그는 팀의 경기가 서울에서 열리는 날엔 꼬박 꼬박 보러 가는 편이다. 경기장에 가지 못할 경우 TV나 KBO 문자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경기 상황을 틈틈이 확인한다. 응원을 하기 위해 구입한 선수 유니폼, 경기장 티켓 구입비 등을 모두 합치면 20~30만 원 정도다. 돈은 좀 들지만 그는 야구를 좋아하면서 생긴 일상생활의 변화를 즐기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건강한 취미가 생겨서 컴퓨터를 멀리하게 됐고, 밖에서 움직이는 횟수가 잦아지게 됐어요.”

홍씨는 야구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야구에 관심을 막 갖기 시작한 이화인들을 위해 기본적인 규칙과 선수에 대해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더해 그는 야구장에 직접 가 볼 것을 추천했다.

“야구 관람을 시작할 땐 간단한 규칙을 알면 보기 쉬워요. 하지만 경기 운영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실제로 경기장을 찾으면 경기 자체와 그 곳의 응원 분위기가 재미를 백배, 천 배로 만들어줘요.”

이소현 기자 sohyunv@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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