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전통과 문화를 만나다

햇살이 따사로운 15일(목) 오전 본교 박물관에서 가을 특별기획전으로 열린 <百年佳約-한·일 혼례문화에 담긴 마음>, <테크놀로지, 전통을 만나다>에 다녀왔다. 두 전시전은 12월24일까지 열린다.


△과거와 미래의 유쾌한 만남 <테크놀로지, 전통을 만나다>

산수화 속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 되면 고인돌이 생기고, 다비드상이 미사일을 타고 날아다니며 산은 높은 빌딩으로 뒤덮인다. 산수화의 풍경이 현대 문명으로 거의 가려질 때쯤 눈발이 흩날리며 모든 것이 눈에 파묻힌다. 다시 봄이 오면서 산수화는 원래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 사계절이 흐르는 고전 산수화에 현대문명의 상징이 입혀지는 작품, 이이남의 ‘만화병풍’이다.

본교 박물관 근현대미술전시관에서 열린 ‘테크놀로지, 전통을 만나다’는 현대 기술을 활용해 유명 작가들의 전통미술 작품이나 전통적 이미지를 새롭게 꾸몄다. 이번 전시회에는 본교 박물관이 강애란, 권기수, 김창겸, 고(故)백남준 등의 작품을 모아 기획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로봇을 형상화한 텔레비전이 눈에 띈다. 화면 속에서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고 가야금을 켜고 있다. 고 백남준의 ‘율곡’이다. 그는 비디오 아트에 한국의 위인 이름을 붙여 미래지향적인 우리의 삶 속에 흐르는 전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두 개의 서랍이 번갈아가며 열렸다 닫혔다하는 고(故) 육태진의 ‘유령가구’도 볼 수 있다. 서랍 속에는 각각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 남자가 끊임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이윤희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작품에 움직임을 도입한 키네틱아트로 손때 묻은 세월을 지나온 가구에 미디어 기술을 사용했다”며 “현재에서 전통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방 전체를 관람한 후 작은 복도에 다다르면 한복을 입고 눈을 감은 여성의 단신 사진 8개가 일렬로 벽에 걸려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사진 속 여성도 관객을 바라보며 함께 돈다. 이는 이주용의 ‘눈을 감다’라는 작품이다. 이 학예연구원은 “눈을 감는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로 죽었다는 표현이기도 한다”며 “전통 복식을 입은 여자들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인물이지만 홀로그램 이미지로 인해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속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관객의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들도 있다. 유현정의 ‘기물몽상(器物夢像)’, 최유미의 ‘디지털 입체 박연폭포’다. ‘기물몽상’에서는 기자가 흰색 판 위에 보자기를 올려놓자 갑자기 그림자 물고기 떼가 몰려들어 보자기를 둘러쌌다. 3D 안경을 쓰고 본 ‘디지털 입체 박연폭포’는 마치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듯 하다. 박물관 안내를 해 준 박계리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정선의 산수화는 복합시점으로 한 폭의 그림에 여러 개의 시점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떨어지는 폭포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시점과 떨어지는 물이 연못과 맞닿아 파장을 일으키는 시점 등이 있는데 이러한 복합시점을 3D 입체로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기획전을 주최한 이 학예연구원은 “이번 기획전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전통을 연상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며 “관객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현재 우리는 전통과 관계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결국 전통 속에 서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백년가약 <百年佳約-한·일 혼례문화에 담긴 마음>

“달을 따라 꽃 같은 님이 오니 둘도 없는 아름다움이 내 집에 있네.”

조선 후기 유생 담락당 하립선생 시의 두 번째 구절이다. 달 같은 남편과 꽃 같은 부인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한일 혼례 물품을 통해 양국의 결혼문화를 비교해보는 ‘한일 혼례문화에 담긴 마음전’이 12월24일까지 본교 박물관 기획전시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양국의 혼례 유물을 통해 혼인에 대한 가치관 및 미의식이 시대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유물은 국립대구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대여했다.

마음전은 세 개의 방으로 전시가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방은 전통 혼례복의 변화, 두 번째 방은 전통 혼례의 절차, 세 번째 방은 일본의 전통 혼례다. 첫 번째 방에는 19세기 조선부터 20세기까지 변화하는 혼례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신부가 혼례 때 입은 녹원삼이 곱게 걸려 있고 삼회장저고리(평상복으로 입는 저고리), 도투락댕기(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머리 끝에 드리우는 헝겊) 등이 이어서 전시돼 있다. 혼례 때 신부는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나 연두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용 모양으로 장식된 비녀를 꽂고 도투락댕기를 땋는다.

마지막으로 대삼작 노리개(부인이 차는 노리개의 하나)로 꽃단장을 마친다. 신랑의 혼례복도 함께 전시돼 있는데 이는 사모관대 차림이라고도 불린다. 사모관대란 머리에 사모(문무백관이 관복을 입을 때 갖추어 쓴 모자)를 쓰고, 단령(조선 말기까지 모든 관원이 평소 집무복으로 착용한 상복)을 입고, 가슴에 흉배(문무관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부착했던 장식용 천)로 장식하고, 허리에 각대(백관이 관복에 두르던 띠)를 차고 목화(관복 차림에 신던 신)를 신는 것이다. 혼례를 올릴 때 신랑은 사선(비단을 발라 만든 부채)을 들고 신부 앞에서 얼굴을 가린다.

신분과 예법을 엄격하게 따진 조선시대이지만 혼례 당일만큼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 허용됐다. 박 학예연구원은 “용잠은 용문양이 있는 비녀로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특별히 혼례 때는 사대부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통 혼례복을 지나 20세기에 신랑 신부가 입었던 혼례복이 전시돼 있다. 혼례복은 전통적인 한복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로 바뀌었다. 신부는 순결을 상징하는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양복 정장을 입었다.

박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이너 노라노(Nora Noh)씨가 1968년 만든 웨딩드레스를 소개하며 “이 웨딩드레스는 영화배우 윤소정씨가 결혼식을 올렸을 때 입은 것이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방에는 전통 혼례의 절차를 알 수 있는 혼례 물품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궁합을 맞춰보고 혼례 날짜를 정하는데 사용된 사주, 살림을 마련하기 위해 신부 집에서 준비한 옷, 장롱, 식기류, 요강 등의 혼수가 나란히 놓여있다. 박 학예연구원은 “별전패에는 집안의 복과 부가 가득하고 다산을 바라는 덕담을 적어 장식하기도 했다.”며 “별전패에는 다산, 집안의 평화 등 덕담이 적혀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쪽 벽에 합방의 한 장면이 전시돼 있다.

신랑 신부는 식이 끝난 후 신방에서 합방을 올렸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신랑을 뜻하는 사모와 신부를 뜻하는 흑견 금박 앞줄댕기(비녀에 둘러 두 어깨에 걸쳐서 양 가슴 앞에 늘이는 긴 금박댕기)가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에는 일본의 전통 혼례 문화를 소개한다. 19~20세기 일본의 혼례 문화는 한국과는 달리 예부터 신부가 본식에서 흰색 혼례복을 입었다고 한다. 속옷, 옷, 겉옷으로 이루어져 있는 새하얀 혼례복이 전시돼 있는데 복식이 흰색인 이유는 신랑의 가풍을 받아드릴 준비가 돼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신랑은 검은색 혼례복을 입고 있다. 박씨는 “검은색을 변하지 않는 색으로 인식해 변함없는 부부 간의 사랑을 상징했다.”고 말했다. 단색의 혼례복 외에 화려한 색의 혼례복이
눈에 띈다. 이처럼 소나무와 학이 수놓아진 화려한 혼례복은 피로연 때 입는 옷이다. 박 학예연구원은 “소나무와 학은 장수를 의미해 신랑신부에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이처럼 다양한 혼례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경은 기자 kelee3@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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