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문인들의 ‘첫 순간’ 담은 수필집 「첫 클릭클릭」 발간

이대동창문인회가 ‘내 삶의 첫 순간’을 주제로 한 수필집 「첫 클릭클릭」을 10월28일 펴냈다. 1~5부로 나뉘어 있는 「첫 클릭클릭」은 첫사랑, 첫 아이, 첫 여행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지는 이대동창문인회 80명의 설레고 풋풋했던 ‘첫 순간’을 반추했다.


△그이와의 첫 만남, 클릭클릭

첫사랑은 그 빛이 바랬을지라도 설레고 풋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임혜기(정외·73년졸)씨는 한 학교 홈페이지에서 친구의 예비 사위를 수소문하려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지난날의 첫사랑이 그 학교에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큰 키에 검은 안경을 쓰던 35년 전 모습 그대로인 임씨의 첫사랑은 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임씨는 그에게 ‘나를 혹시 기억하세요?’하고 메일을 보냈다.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듣던 나를 기억하는지 알려 주세요. 눈이 참 예쁘다고 칭찬해 주던 여학생인데 이제 할머니가 돼서 나타난 것 꿈 같지 않아요? (중략) 그는 내가 묻는 말에 구구절절 친절하게 대답을 해서 보내주었다. 나는 그의 인생이 얼마나 정확하고 성실했을 것인지 훤하게 보는 듯했다.

문복희(국어국문 석사·86졸)씨 앞에 가끔 나타나 「사랑법」같은 시들을 암송해 준 남자가 있었다. 문씨의 생생한 첫사랑 이야기다. 시를 즐겼던 첫사랑 덕분에 문씨의 시 세계도 날로 넓어졌다. 문씨는 첫사랑에게 선물받은 시집인 「풀잎」을 통해 상상력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처음 시집을 건네준 남자, 그가 나에게 시집을 건네주면서 함께 남긴 말은 “앞으로 꼭 시집 내세요. 그리고 꼭 시집 오세요.” 나는 그때 그에게 한 가지만 약속했었다. ‘시인 문복희’라는 이름으로 꼭 시집을 내겠다고… (중략) 나에게 처음 시집을 건네준 그 남자는 바로 나의 첫사랑, 나의 남편이다.


△아득히 먼 곳에서 온 손님, 나의 첫 분신

가족이라는 인연은 뜻밖에도 혹은 필연적으로도 찾아온다. 조현례(영문·58년졸)씨는 아이를 낳을 형편이 못 돼 ‘허니문 베이비’를 낳지 않으려 했다. 조씨는 첫 아이를 유산 시킬 수 없다며 끝내 반대하던 의사 때문에 아이를 낳게 됐다. 고심 끝에 낳은 아들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하듯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50세 가까이 된 아들은 이제 함께 수다를 떠는 글쓴이의 ‘행복’이 됐다.

나의 첫 분신이었던 우리 아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였는지 태중에서부터 이해심 많은 효자였다. (중략) 내가 그때 너무나 아기(재경)를 예뻐하고 쩔쩔 매는 걸 본 우리 큰언니께서 “얘가 지금 80살에 첫아들을 낳았다”고 하셨다. 어찌 그리도 잘 생겼는지,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만지면 깨질까 무서워서 목욕도 혼자서는 절대로 씻기지 못했었다.

임완숙(국문·68년졸)씨는 어머니를 여읜 후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임씨가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한 아기가 부모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왠지 임씨의 마음을 울렸다. 임씨는 아기의 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아들었다. 아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임씨를 바라봤다. 아기는 눈물이 그렁한 파란 눈으로 임씨를 보며 방긋 웃었다. 다음 날, 임씨는 문득 다음 생에 서양의 남자아이로 태어나고 싶다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어머니의 49재를 지낸 지 8개월쯤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 눈물이 그렁한 아기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러자 아픈 상처위에 시원한 약수를 뿌린 듯 애절한 슬픔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알프스의 하얀 설원 위로 나는 어머니를 여운 질긴 슬픔들을 훌훌 날려버렸다.


△추억으로 가는 길, 다시 희망을 노래하련다

인생의 귀로를 바라보는 길에서 첫 여행길은 더욱 빛난다. 김현자(국문·66년졸)씨가 대입 시험을 치르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에 왔던 날 서울은 눈이 내려 온통 은빛이었다. 김씨가 은빛 꿈을 갖고 시작한 서울생활은 외롭고 힘들었다. 김씨가 저녁 무렵 이화교에서 바라보던 신촌의 불빛은 아름다우나 차가웠다. 그에게 서울은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양면적인 곳이었다. 그로부터 약5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서울과의 첫 만남에서 희망을 찾았다.

굴레방다리, 수표교, 잠실, 학여울은 사라진 시간 속에 묻혀 이름만 남아 있지만, 우리들 뭇의식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은밀하게 살아 있다. 꿈과 현실이 같이 가는 곳 서울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이 집약되어 있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 그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복닥거리며 오늘도 나는 역동적인 삶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문인들은 ‘첫 월급봉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이야기, ‘당신의 첫 태클’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삶에 눈뜨던 순간도 그렸다. 천양희(국문·66년졸)씨는 ‘골목길 안의 휘파람 소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기는 것일까. 옛날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추억 속에 있다. 그 추억을 통해 내 인생도 지나간다. 골목길 안의 휘파람 소리처럼.

이 수필집에서는 ‘첫 순간’을 ‘삶의 떡잎이 되어준 시간’이라 말한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문인들에게 ‘첫 순간’은 생생히 살아 있다. 이제 책장을 덮고, 당신의 처음을 떠올려보자.




임경민 기자 grey24@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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