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영화보기> (6)
결정(結晶)-이미지 : 오손 웰즈

우리가 탁상 시계에서 시간을 본 것뿐이라면 그것은 현실적 이미지이지만, 시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선물했던 옛 친구를 떠올린다면 이제 우리는 과거 속으로, 또는 그것에 담긴 잠재적 이미지와 마주하는 것이다. 어떤 사물과 마주쳤을 때, 우리가 기억의 심층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사물의 보다 깊은 차원을 목격하게 된다. 베르그손의 8자형 도식은 이러한 인식론적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인 과정을 표현한다. 아래쪽 점선이 하나의 물체의 다양한 층위를 나타낸다면, 위쪽 실선은 하나의 정신의 다양한 수준을 표시한다.

들뢰즈는 잠재적 이미지의 다양한 층위 혹은 유형들을 구분한다. 우선 어떤 계기 때문에 기억을 불러오는 "회상-이미지"가 있다. 맨케비츠의 대표작 <이브의 모든 것>(1950)은 주인공 이브가 연극계의 큰 상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이브가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 일들을 회상한다. 일반적으로 오버랩은 회상-이미지를 보여주는 관습적인 장치로 사용된다. 두 번째로,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는 "꿈-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무르나우의 <마지막 웃음>(1924)의 파티 장면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직장인 호텔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행복한 꿈을 꾼다. 이 유형의 경우, 이중인화가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세 번째로, 꿈이 이제 외면화되어 인물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자체가 춤추고 운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들뢰즈는 이를 "세계-이미지"라 부른다. 코미디 뮤지컬이 대표적인 장르인데, 등장인물들은 노래와 춤을 시작한다기보다, 이미 운동하고 있는 거리의 리듬에 올라타듯이 노래하고 춤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것들은 순수한 잠재적 이미지라기보다 현재와 관련하여 ‘현실화되고 있는’ 잠재적 이미지들이다. 그렇다면 가장 순수한 상태의 잠재적 이미지는 무엇인가? 들뢰즈는 그것을 "결정-이미지"(image-cristal)라 부른다.

들뢰즈가 예로 드는 가장 완벽한 결정-이미지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과 특히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의 후반부 장면들이다. 두 영화 모두 오손 웰즈가 직접 주인공을 연기하는데, 30대의 젊은 나이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상하이 여인>에는 전형적인 팜프 파탈이 등장한다. 웰즈가 연기한 오하라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빠졌다고 믿지만, 결국 남편 살해를 포함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선택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심한 배신감, 혼란, 분노를 느끼며 그는 그녀 앞에 마주 선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영화는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의도적으로 놀이 동산으로 무대를 옮긴다. 거울이가득 차 있는 방 안에 두 인물은 서게 되는데, 이 거울들 때문에 이미지는 무수히 많이 반사되고 증식된다. 어떤 것이 실제 인물이고 반사된 이미지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계획된 음모를 뒤늦게 깨달으면서 남자 주인공은 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여자 주인공은  감추어진 자신의 여러 개의 정체성을 노출시키는데, 이 장면은 이것을 매우 훌륭하게 표현한다. 여기에서 여자 주인공은 단지 그 남자를 이용한 것에 멈추지 않고, 실제로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듯한 암시를 준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거울 이미지는, 자신 스스로도 통일시킬 수 없는 분열된 복수 개의 정체성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현실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는 식별 불가능하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현실적 이미지 역시 잠재적 이미지와 같은 수준에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표현하는 하나의 부분적인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 현실적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계속 늘어나는 잠재적 이미지들을 하나씩 제거해야만 하고,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총을 발사해 거울 속 이미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깨뜨려야만 한다. 이처럼 현실적 이미지가 그것의 잠재적 이미지들과 합착되어 분리될 수 없도록 결정화된 것을 들뢰즈는 결정-이미지라 부른다.

이것이 시간-이미지의 왕좌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 이미지가 시간의 탄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손이 지적하는 것처럼,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지 않는다.  지금 현재가 새로운 현재에 의해 대체될 뿐이라면, 시간은 현재들의 나열만이 있을 뿐 과거를 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는 언제나 현재와 함께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는언제나 동시에 과거로 분리된다. 이것이 베르그손 시간론의 역설 중 하나이다. 현재는 과거와 "동시간적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현실적 이미지는 최소한의 순간에 잠재적 이미지를 분기시키고 즉각적으로 그것과 회로를 형성한다. 시간의 탄생, "순수한 상태에 있는 약간의 시간", 이것을 결정-이미지는 보여준다.



이화인문과학원 이찬웅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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