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9월17일 시작된 반(反) 월가시위로 미국이 시끄럽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청년실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뿔난 미국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 뉴욕 맨해튼, 월가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은 그 시위의 중심가다. 이곳에서 기자는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는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기자는 10월29일과 30일 이틀간 ‘1%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팻말을 들고 포스트 월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주코티 공원을 찾았다.

 

“Together, we are stronger(함께라면 우리는 더욱 강하다)”

지난달 29일 오후2시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른 두 명을 덮을만한 크기의 현수막에 굵게 쓰인 글귀였다. 공원 입구에서는 약30명의 사람들은 각자 만든 현수막을 들고 연신 구호를 외쳐댔다. “We are 99%(우리는 99%다)”, “Occupy 1%(1%를 점령하라)”

약20대의 크고 작은 경찰 차량은 공원을 둘러싸고 약30명의 경찰들은 공원 길목에 서서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Dance Revolution(춤 혁명)’이라고 적힌 팻말을 앞세워 공원 담벼락에 올라서 춤추는 여대생이 있는가 하면 뉴욕시에서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전기를 만들어내는 남자도 있었다. 이 묘한 광경을 담기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과 기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이러한 광경을 보는 뉴욕 경찰들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공원 안에는 어림잡아 70개의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텐트는 시위하는 사람들이 노숙하는 곳이다. 파란색 비닐로 덮인 텐트촌은 시위하는 사람과 기자,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텐트촌 바닥에는 구겨진 음료수 캔, 과자 봉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양 손에 카메라를 움켜진 사람들은 텐트 안의 광경을 유심히 보면서 지나갔다.

9월17일부터 한 달이 넘게 시위가 진행된 주코티 공원. 이곳의 옛 이름은 리버티 플라자(Liberty Plaza, 자유 광장)다. 리버티 플라자는 2006년 9․11테러로 폐허가 된 이곳을 복구하는데 돈을 기부한 부동산 재벌의 이름을 따 주코티 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곳을 부동산 재벌 이름인 주코티가 아닌 리버티 플라자라 부르고 있었다.

미국의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춥고 너저분한 이곳에 나와 있을까. 10월29일 주코티에서 만난 그들은 ‘월가를 점령하라’, ‘우리는 99%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기업은 좀비다‘ 등의 글귀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네이트 바처스(Nate Barchus,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예술전공 10년졸)씨는 “나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며 “정경유착과 높은 실업률에 저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경제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미국의 실업률은 9.8%로 그리스(12.7%)를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위대를 주시하는 뉴욕 경찰들을 피사체 삼아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과 통기타를 연주하며 자작곡을 부르는 20살의 대학생도 있었다. 파슨스에서 2년간 ‘공예와 예술’ 강의를 맡은 사브리나 게쉬완트너(Sabrina Gschwandtner)는 뜨개질로 손수 만든 목도리와 장갑, 스웨터를 시위하는 군중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날이 추워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추위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코티에서 벌어지는 반(反) 월가시위에는 특정한 지도자도, 뚜렷한 행동방식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회의를 통해 일정을 짜고 외부 연사의 강연이나 포럼 등을 진행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공원에서 구호를 외치고 자체 제작한 신문 ‘Occupy Wall street journal’을 공원 입구를 오가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신문을 가져가면서 모금함에 돈을 넣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앤 라이(Anne Lai, 뉴스쿨 사진전공 11년졸)씨는 “구체적인 요구와 지도자가 없는 이번 시위는 아래에서부터 조직된 진정한 움직임”이라며 “자기가 고민하는 어떤 것이든 이곳에서 표현하면 되는데, 그것이 Occupy Wall Street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시위대의 구호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킨 월가의 거대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구호 외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에게 말한다, NO!’, ‘우리의 일자리를 중국으로부터 돌려주세요’, ‘전쟁을 끝내라’, ‘우리는 깨끗한 지구를 원한다’ 등 다양한 주제의 슬로건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월가의 거대 금융자본을 반대한다는 시위의 초기 목적은 다소 흐려진 듯 보였다.

3천100㎡ 규모의 공원 초입에는 뉴욕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침낭과 매트리스, 방한복, 담요 등 월동용품을 싼 파란 비닐봉투 약40개가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는 시위가 한겨울까지 계속될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공원 주변은 프레즐, 핫도그, 샌드위치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때 아닌 대목을 만나 일렬로 줄 지어있고, 공원과 그 주변으로 음식 부스러기를 노리는 비둘기들이 연일 날아들었다. 공원 위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댔지만 시위 도중 월가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차가웠다.


<Occupy Wall street 시위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캐나다의 비영리 단체가 발행하는 잡지 <애드버스터스(Adversters)>가 지난7월 온라인상에서 처음으로 반(反) 월가 시위를 제안한 후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시작됐다. 9월17일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겠다며 약300명의 시민이 주코티 공원에 모인 후, 반(反) 월가시위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대금융자본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했으며 소득 양극화, 높은 실업률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반(反) 월가시위는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며 한국에서는 10월15일 서울 여의도와 시청,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이지훈 기자 ljh5619@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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