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에서 찾는 삶의 힘
미물에서 찾는 삶의 힘
  • 이서현(국문․08)
  • 승인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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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물(微物)’은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이르는 말로 자주 쓰인다. 존재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이성을 논하고, 자연적인 것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진 인간에 비해 동물 혹은 미물들은 본능에 충실하며 주어진 생애의 주기를 따른다. 하지만 작고 보잘 것 없다는 그들은 문득 나타나서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을 숙고하게 만든다.

 날이 더워질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책상 근처에 출몰하는 아주 작고 검은 벌레가 있다. 이 벌레를 처음 보았을 때는 다른 벌레를 죽일 때와 다를 바 없이 종이 한 귀퉁이를 찢어 무심하게 짓이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다가간 순간 벌레는 사라져 버렸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이 벌레가 성큼 내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위협을 느끼면 벼룩처럼 높이 뛰어서 이동하는 것 같아 보였다. 검색 끝에 찾아낸 이 미물의 학명은 알톡토기(Smynthuridae)로 주로 풀이 있는 곳에 서식하는 곤충이라고 한다. 아마 뒷마당의 화단에서 서식하고 있던 것들이 방의 불빛을 따라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죽이기 위해 조준을 하고 있는 때에 벌레가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실로 너무나 공포 스럽다. 알톡토기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질 때면 도대체 이 벌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내 몸에 붙어있지나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두려움에 떨곤 한다. 때문에 알톡토기가 나타나면 바짝 긴장을 한 상태로 조용히 그 동태를 살피며 그것이 어딘가로 튀어 나가버리기 전에 빠른 속도로 잡아야 한다.

 벌레잡기의 고충을 안겨준 알톡토기 덕분에 한동안은 이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몸서리를 치며 싫은 소리를 외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알톡토기가 가진 생존 전략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쉽게 잡히려고 하지 않는 알톡토기는 생각보다 끈질겼고 저 나름의 살고자 하는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무작정 달려들게 되면 벌레는 어느 새 사라져 내 눈 앞에 와있거나, 또는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실로 이 하찮은 미물은 고등 동물인 인간을 당황하게 만드는 치열한 생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알톡토기보다 친숙하고 출몰 장소가 다양한 불개미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달콤하거나 짠 냄새가 조금이라도 풍기는 곳에 개미들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음식물을 방치 한 것이 짧은 순간이라고 생각했던 때에도, 아주 소량의 음식물을 흘렸을 때에도 그들은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그리고는 일단 먹이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한 뒤에 동료를 데리고 오기 위해 서둘러 제 집으로 돌아간다. 제 동료를 부르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개미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빗대어 말하는 ‘일개미’라는 말이 얼마나 개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느낄 수 있다.

 본래 개미는 생태계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이로운 곤충이다. 그들은 흙을 변화시키며 유기체와 땅의 영양분을 이동하고, 곤충 개체수를 변화시키고 씨앗을 퍼뜨린다. 하지만 현재 인간에게 있어서 개미는 그저 ‘해충’일 뿐이다. 여기저기서 배회하는 정찰병 역할의 개미를 한두 마리 잡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여전히 개미들은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본능이 이끄는 대로 음식물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은 용의주도하다. 개미가 어디서 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언제나 개미 박멸에 실패하곤 한다. 인간의 손가락 하나에 짓눌리는 작은 미물인 개미이지만 인류의 역사보다 몇 십 배는 오래된 그들의 삶의 노하우에는 우리가 그들을 도저히 박멸할 수 없게 만드는 끈질김이 녹아있다.

 우리가 한낱 ‘미물’이라고 여기던 것들은 이처럼 항상 치열하게 살고 있다. 물론 복잡한 감정과 관계를 가지는 인간으로서 언제나 치열하게 사는 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란 은행잎이 쏟아지는 가을,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나에게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은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가끔, 잡을 수 없는 것을 좇고 있다고 느낄 때 즈음 조금만 아래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는 분명 미물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삶의 고동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