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표
삶의 지표
  • 김우창 석좌교수(이화학술원)
  • 승인 201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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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정보 통신의 발달 때문인지 천재지변 또는 센세이션이 될 만한 뉴스가 끊어지는 날이 없다. 금년 들어서만도 일본의 지진, 쓰나미와 원전 사고의 뉴스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더니, 2001년 9월 이후 세계적 테러리즘의 진원이 되었던 오사마 빈 라덴 살해, 그리고는 같은 크기의 사건은 아니지만, 국제 금융 체제에 막대한 힘을 행사하는 IMF의 수장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성폭행 행위 혐의로 체포된 뉴스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일부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퍼진 세계 종말의 예언이 크게 호기심을 촉발하는 뉴스가 되었다.

이 예언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맹신에 사로잡히는가를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삽화로 끝났다. 그러나 이 종말의 예언 또는 예감은 그 나름의 우의(寓意)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화되는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환경문제 등과 관련하여 일고 있는 불안감을 요약하고, 또 삶 전체 또는 세계 전체를 일거에 거머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도 무관심할 수만은 없게 우리의 삶이 하나로 묶여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멀고 가까운 곳의 여러 일 모두가 자신의 삶의 길을 헤아려 나가는 데에 지표가 된다.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리즘 계획은 이슬람교의 신성한 땅 사우디아라비아를 더럽히는 미군을 축출한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여 진다. 그리고 그는, 미국은 도덕적으로 퇴폐된 삶을 대표하는 문명이고 그러니만큼 미국인은 모두 죽여 마땅하고, 이것이 이슬람의 정신적 가치를 보존하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3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9.11 사건은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여러 논평들은 그가 신앙심이 깊고 조용하고 금욕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거부(巨富)의 아들로서의 삶을 버린 것으로 보아도 그가 물질적 안락을 철저하게 버릴 각오를 한 사람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기희생의 각오는 쉽게 자신의 어떤 추상적 세계상의 실현을 위하여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고 기존질서로서의 온 세계의 멸망도 불사하는 일로 이어진다.

스트로스칸 사건은 과연 오사마 빈라덴 같은 사람이 비난한 퇴폐 질서 속에서 일어 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비슷하게 큰 세계 속에서 부풀려진 삶의 삽화라 할 수 있다. 그가 빈 라덴과 같은 과대망상을 가진 혁명아(革命兒)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뉴욕 호텔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다.

어떤 관점--특히 프랑스 지식계의 관점에서는 그것은 단순히 영미와 프랑스의 성문화의 차이에 기인한, 그리고 영미의 억압적 질서를 표현하는 사건일 뿐이다. 사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영미--일반적으로 구미에서의 통념은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보는 바와 같은 칸막이 인격을 유지하면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일까? 다른 논평의 하나는 대서양의 어느 쪽에서나 방만한 성문화는 지배층들의 습속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습관이 거기에도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삶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큰 것을 생각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떠나서 큰 것만을 생각하고 수행하는 삶도 여러 가지 비인간화의 가능성을 수반한다. 자기의 삶을 계획하는 데에 있어서, 큰 테두리는 어느 정도의 것이어야 할까? 작은 것에 집착하여 사는 삶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큰 것의 유혹은 오늘의 삶을 비참하게 할 수 있다.

큰 것 가운데 작은 것의 고려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후, 그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한 독일의 메르켈 수상은, 살해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그것에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반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빈 라덴을 생포하지 않고 현장에서 충살한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좋은 제도는 큰 것과 함께 작은 것도 배려하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