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인문학교실


요즈음 40, 50대쯤 되는 사람들은‘즈봉’이라고 하면 거의 다 알아듣는다. 개중에는‘쓰봉’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즈봉’이든‘스봉’이든 모두‘바지’를 뜻하는 일본어‘즈봉’(ズボン)에서 왔다. 여름에는 반바지를 많이 입었는데 이 반바지는 일본어‘한’(半)에다‘즈봉’을 붙여‘한즈봉’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즈봉’도 고유한 일본어는 아니다.‘즈봉’은 불어‘쥐뽕(jupon)’에서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어가 일본어에 들어갔을까? 때는 명치(明治, めいじ)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부터 1912년까지 이어진 명치시대를 통해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많은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지의 착용이다. 알다시피 일본 사람들은 나라(奈良, なら)시대 이후 전통의상인 기모노(着物, きもの)를 입어서 바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 바지를 착용하면서 그것을 지칭할 적당한 단어를 찾던 중 불어 쥐뽕(jupon)을 받아들여‘즈봉’이라고 했다.‘즈봉’은 한말 일본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시 한국에 들어왔고, 사람들은 그것을‘즈봉’,‘스봉’,‘주봉’등으로 불렀던 것이다.

한편, 불어 쥐뽕(jupon)이 생긴 것은 14세기다. 이 말은 여성의‘속치마’를 뜻하는 말로, 속어로는‘여자’,‘아가씨’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말은 본래는 여성과 관련하여 쓰였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양복의 아랫바지, 따라서 주로 남성과 관련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래되면서 남녀의 성별 개념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단어의 어원은 12세기 쥐쁘(jupe)다. 쥡쁘(jupe)는‘면으로 된 긴 아랫옷’으로 오늘날에는 여성의 치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바지는‘빵딸롱(pantalo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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