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이발소의 수다 한바탕, 아프리카의 밤은 깊어가고

<편집자주> 본교 외국인 학생 수는 2008년~2010년 매해 약10%씩 증가했다. 대학정보공시자료에 따르면 작년 본교의 외국인 학생 수(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 어학연수생, 교환학생, 방문학생, 기타연수생)는 2천776명이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외국인 학생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찾는 장소,‘서울 속 내 고향’을 소개하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1동에 위치한 이화시장은 거주 인구 740명, 유동 인구 300명을 기록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안식처다.

매주 금요일 이곳에 위치한 낡은 상가건물들은 시끌벅적해진다. 주중에는 생업에 종사하던 아프리카인들이 주말에 휴식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빠른 말소리는 이국적인 음악소리와 섞여 시장 건물 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우린씨도 2주에 한번 꼴로 금요일 이화시장을 찾는다. 이곳에 오면 나이지리아, 르완다, 가나 등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는“타국에 오면 대륙, 인종, 외국인이라는 점 등 하나의 공통점만 생겨도 상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며“이곳에 모인 이들은 스스럼없이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1동에 아프리카인들이 많아진 것은 최근 5년 사이의 일이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용산구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은 2005년 400명에서 작년 870명으로 5년 사이 약80% 증가했다. 미군기지가 이전되며 경기 침체기를 맞고 건물 임대료가 낮아지자 비교적 돈이 덜 드는 이태원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화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ㄱ씨는“이태원은 물가가 전반적으로 싸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며“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더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이태원에 거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시장 식료품점에서 아프리카 향신료를 박스에 담아 팔고있다.

마우린씨가 이화시장에서 즐겨 찾는 곳은 이태원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낡은 상가 건물이다. 그는 2층의 조그만 가나음식점에서 향수를 달랜다. 음식점 주인은 가나에서 온 데데씨. 마우린씨는 데데씨를 보자마자 반갑다며 포옹을 나눈다.

작년 이곳에서 처음 만난 이들의 인사는 마치 고향에 있는 언니, 동생을 보듯 살갑다. 가게 안에는 가나 뿐 아니라 다양한 아프리카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가나에는 다양한 종족과 민족들이 거주하기 때문에 동서남북에 따라 음식의 형태나 관념이 많이 달라요. 덕분에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해 타국 사람들도 즐겨찾죠.”

가나요리는 곡류나 어·육류에 국물을 곁들인 음식이 많다. 음식을 먹을 때는 주로 맨손을 사용한다. 밥이나 콩요리를 먹을 때는 숟가락을 쓰기도 하지만 옥수수가루, 카사바(고구마와 유사한 과일) 가루를 발효해 만들어먹는 빵인 반쿠와 같은 전통음식은 주로 맨손으로 먹는다. 가게 주인은 손님들을 위해 세정제와 손 씻을 물이 담긴 커다란 대야를 식탁에 내놓는다.

시장 골목에 위치한 식료품점에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과일과 향신료들이 진열돼있다.

열대과일인 플랜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로 바나나의 일종이다. 날것으로 먹는 바나나 종인 그로미셸과 캐번디시와는 달리 플랜틴은 조리를 해야만 먹을 수 있다. 생긴 것이 비슷하다보니 점원은 가끔 비(非)아프리카계 손님들에게 플랜틴을 일반 바나나라고 소개하며 장난치기도 한다.

“플랜틴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식거리에요. 한국 노점상의 인기메뉴가 떡볶이 이듯 아프리카의 노점상 인기메뉴는 땅콩과 함께 먹는 구운 플렌틴이죠.”

이곳 이화시장에서는 유독 미용실이나 이발소가 많다. 음식점 옆에 위치한 미용실 벽면에는 레게 머리를 한 남녀의 사진들이 벽지마냥 붙어있다.

“아프리카인들은 강한 햇볕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해야 하다 보니 머릿결이 억센 편이에요. 곱슬머리를 그대로 두면 머리카락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 정도죠. 그래서 머리를 짧게 밀어버리거나 땋아서 고정해줘야 해요. 레게머리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헤어스타일이죠.”

이화시장 내 미용실
레게머리는 일반적인 한국 미용실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특수 미용실의 경우 레게머리를 해주지만 미숙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이곳에 와서 머리를 손질한다.

“한국인 미용사를 통해 레게머리를 하려면 특수 미용실에 가야해요. 하지만 금액도 비싸고 실력이 서툰 경우가 많죠.”

이곳 미용실과 이발소는 아프리카인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이발소 주인은 손님들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주거나 고국에서 나온 신간 영화에 대해 알려준다. 가게의 한 구석에는 나이지리아 및 가나의 신간 영화 CD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손님들은 마치 고향의 미용실에 온 듯한 기분에 머리 손질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곳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다. 사람들과 한바탕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나면 어느새 금요일 밤이 지나간다.

“타지 생활하는 외국인에겐 어딜 가나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뒤따라요. 이곳은 그 시선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죠.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마음 속에 쌓여있던 타지 생활의 애환을 녹여줘요. 이화시장의 세련되지 않고 낙후된 건물들 속에서 나는 아프리카의 온기를 느낍니다.”



가나 문화와 비교해 본 한국사회

"지하철 자리양보, 경어체 사용… 웃어른 공경하는 문화가 인상깊었어요"

이태원 가나음식점을 찾은 마우린씨

검은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마우린(정외·10)씨는 가나 출신이다. 그는 작년 EGPP(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왔다.

“가나에서 왔다고 하면 초콜릿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가나는 열대기후라 카카오 열매가 많이 자라요. 카카오가 전체 수출량의 60%이상을 차지할 정도죠.”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고교 시절 봤던‘풀하우스'나 '대장금' 같은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한국드라마는 가나에서도 인기가 많아요.‘풀하우스’나‘꽃보다 남자’에 열광하는 대학생들도 있죠.”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던 한국사회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한국사회에서 눈여겨봤던 점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였다.

“가나의 전통문화는 미국식 가치관과 공존하지 못한 채 소멸되고 있어요. 특히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약해졌죠.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에서 웃어른에게 자리 양보하는 모습, 경어체를 쓰는 모습 등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아직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돼지 않아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그는 요즘 한국어 공부와 전공 공부를 병행하느라 바쁘다. 낮에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밤이 되면 한국어 공부하느라 소홀히 했던 전공 공부를 한다.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새벽 4시까지 공부할 때가 많아요. 타지에서 공부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를 얻은 거잖아요.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의 장래희망은 U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다.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요. 앞으로 한국어가 익숙해지면 학과 공부 외에도 다방면의 지식을 쌓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겁니다.”

최은진 기자 perfectoe1@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