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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금) 일본 동북부에 발생한 강진과 해일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상자 및 실종자 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다.

일본 경찰청이 집계한 사상자(18일(금) 오후7시 기준)는 9천267명, 실종자는 1만316명에 이른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수치일 뿐, 사망자 수만 최대 수만명 선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예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까지 송두리째 파괴돼 경제적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번 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국민을 돕자는 온정의 물결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

본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인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금 운동, 학교가 진행하는 온라인 모금 활동 등 교내 곳곳에서도 지진의 피해자를 위한 성금 모금이 펼쳐지고 있다.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이 따뜻한 손길을 피어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도를 넘은 글이 지진 희생자를 애도하고, 일본 국민들을 위로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일본 지진 희생자들을 두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을 작성한 네티즌들의 논리는‘인과응보’였다.‘종군위안부’,‘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등 과거사를 언급하며 이번 지진이 발생해 잘 됐다는 것이다.

14일(월) 포털사이트 다음(daum.net)의 아고라에는‘인간적으론 안 된 일이지만 입가엔 웃음이’라는 글이 게재됐다. 이 네티즌은 글에서“(일본인들이) 죽인 인명은 수천만명에 가까울 텐데 지진대비 시설이 좋아서 (일본인들) 많이 죽어봤자 수십만명밖에 더 죽겠습니까”라며“그냥 이 상황을 즐기자구요”라고 주장했다. 이 글에는“나도 모르게 실웃음이 나온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11일(금) 한 인터넷 토론방에서는‘일본 쓰나미 쌤통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는 토론이 열렸다. 네티즌들은 이 토론방에‘쓰나미가 너무 규모가 작아 아쉽기만 하네요’,‘일본 고소하다’등의 댓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과거사는 과거사다. 물론 일본의 만행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우선은 안타까워하고,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가수 김장훈은 13일(일) 자신의 싸이월드 홈페이지(cyworld.com/gyhoon77)에‘일본 사람들이 죽은 걸 좋아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라며‘더 정확히 말해 나쁜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한일 양국의 갈등은) 합리적으로, 순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지 무턱대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는 16일(수) 열 예정이던 수요시위를 취소했다. 정대협은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왔다.

수요시위는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당시 1차례 취소된 것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19년 동안 끊임없이 열렸다. 14일(월) <연합뉴스>‘정대협‘수요시위’취소…희생자 추모’기사에 따르면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대신 침묵으로 이번 강진으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추모하고 해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6일(수) 수요시위 대신 열린 추모 침묵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지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연합뉴스>‘일 재앙에 눈물 글썽인 위안부 할머니’기사(16일(수)자 보도)에서“일본에 우리가 당한 것은 굉장히 분하지만 미운 것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며“희생당하신 분들을 위해 이 추운 날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나와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고 말했다. 길원옥 할머니도“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무슨 말을 하겠나. 죄는 밉지만 사람은 밉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인과응보를 운운한 일부 네티즌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그 네티즌들이 말하는 일본의 잘못을 직접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은“일본의 만행은 잊을 수 없지만 일단은 신음하는 일본인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철부지 네티즌들이 역지사지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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