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 법 분야에서 활동한 이화인 4명
여성 노동, 법 분야에서 활동한 이화인 4명
  • 이소현 기자, 한보민
  • 승인 2011.0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학 교재 제작, 정리해고제 데모, 호주제 폐지 운동 등 여성 권익 위해 힘써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기획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에 본지는 노동, 법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힘썼던 이화인들의 이야기를 「여성운동하는 사람들」과 고(故) 최명아 열사 추모 홈페이지(samchang.or.kr/mem_choi) 등에서 살펴봤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를 위한 운동에 전념했던 이화인

 1987년 일어난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여성 사회운동이 제도화되고 체   계화됐는데 기여했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 뿐 아니라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본교생들은 노동현장에 뛰어들거나 야학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강자(도서관·76년졸)씨는 1976년 야학에서 청계피복노조 여성 조합원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며 그들과 인연을 맺었다. 정씨는 야학교재를 만들고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의 근무에 대한 고민을 상담해줬다. 정씨는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 창립에 참여해 고용안정, 고용평등, 모성보호를 위한 일을 진행했다. 정씨가 야학에서 겪은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서 나타난다.

“그때 가르친 것이 근로기준법에 나온 한자들이었어요. (중략) 당시 제가 만난 여성들은 저연령, 저학력, 저임금의‘3저’노동자들이었어요. 하루 3교대 근무를 하거나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하는 도급제로 14시간 긴장 속에서 노동을 하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정말 비참했어요.”

1998년 2월 IMF(국제통화기금)의 여파로 노동계에서는 정리해고제(기업이 경제적·기술적 여건의 변화에 따른 경영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자를 정리하는 것)와 파견근로제(인력공급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를 다른 업체에 파견해 사용사업주의 지시·감독을 받아 일하도록 하는 근로제도)를 법률로 제정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여성노동자들은 이 시점부터 비정규직, 불안정고용직, 주변부 노동자로 밀려났다.

이에 민주노총 조직1부장이었던 고(故) 최명아(행정·85년졸)씨는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조직하고, 농성을 하며 정리해고제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정리해고제 반대운동을 펼쳤던 최씨의 다짐은 1993년 10월4일 그의 일기에서도 드러난다.

“동지에 대해서는 봄날처럼 따사롭고 사업에 대해서는 여름날처럼 뜨겁고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가을바람이 낙엽을 쓸어버리듯하고 저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해야 한다.”

1990년대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고락을 나눴던 이도 있다. 대학졸업 후 여성신문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던 고(故) 김주리(정외·86년졸)씨는 봉제공장에서 여성을 위한 노동운동을 했다.

김씨는 1992년 동료 5명과 모여‘미인들이 모인 회사’(미모사)를 만들었다. 미모사는 봉제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벌인 노동조합 결성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생계를 해결하고자 한 생산 공동체였다. 김씨와 노동자들은 미싱 4대로 봉제공장 하청 일을 하며 노조를 설립하고, 여성 고용을 안정시키는 등의 노동 운동을 했다.

△‘호폐모’발족,‘내 제사 거부운동’…가족에서의 지위향상 위해 노력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이화인의 활동이 민법 개정도 이뤄냈다.

                                     

2005년 3월31일 호주를 규정한 민법 제778조가 삭제되기까지 고은광순(사회·73학번)씨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였다. 고은씨는 온라인 사이트‘호주제 폐지를 위한 모임(호폐모)’을 운영하며 호주제 폐지 운동을 진행했다. 고은씨가 호주제 폐지 운동을 벌인 이유는「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 나와있다.

“한의원에 있으면 20번씩 낙태를 하고서도 아들 낳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여성, 딸 7명을 낳고 쫓겨나게 생겼다고 오는 여성, 종갓집이라서 첫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여성 등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토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아와요.”

1997년 고은씨는‘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도 진행했다. 그는 1998년 11월 호폐모를 발족시켜 온·오프라인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약5천명의 회원이 가입했던 호폐모는 호주제 폐지라는 단일 사안으로 활동한 유일한 단체였다. 고은씨는 매월 셋째주 일요일 대학로에서 호주제 폐지 거리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한 고은씨의 생각은 그가 가수 김건모의 노래「핑계」를 개사한‘핑계 대지 마. 호주제 폐지해!’에서 잘 드러난다.

내게 그런 차별하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호주제로 새천년을 바랄 수 있니. 삼종지도 사종지도 강요한 호주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어. 가족법 호적법 속에 숨겨진 의미는 모든 남잔 모든 여자보다 우월하대. (중략) 아름다운 전통이란 거짓으로 넌 차별을 하고 있어.

고은씨는 2009년 10월30일부터 다음 카페‘내 제사 거부, 아이들아 내 제살랑 지내지마라

(cafe.daum.net/nomyjesa)’를 통해‘내 제사 거부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내 제사 거부 운동’은 남성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고, 여성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반적인 명절 모습에 새로운 명절 문화의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다. 11일(금) 5시 기준 66명이 가입된 이 카페에는 총 46명의 회원이‘내 제사 거부 서명글’을 올렸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앞으로도 이화여대 학생들이 우리나라 여성 뿐 아니라 세계의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은 여성이 당면한 차별과 불이익을 철폐하기 위해 30년 동안 달려온 이화의 숨은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소현 기자 sohyunv@ewhain.net
한보민 기자 star_yuka@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