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유학생 칼럼>

백명이 넘는다. 토론이 가능할까. 미국 교실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방식은 조금 다르다. 100분 토론이 대형 강의실에서 이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미국에서 토론은 138명으로 가득찬 오디토리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교수가 묻는다.“미디어 기업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죠?”한국에서라면 한 동안의 침묵을 깨고 교수님이“그렇죠. 광고가 중요하죠”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광고”라고 말했겠지만, 누가 뭐라고 말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이곳 학생들은 질문이 주어지면 일단 앉은 자리에서 손을 든다. 그러면 교수는 특정 학생을 지목한다. 발언권을 얻어 이야기하는 만큼 속삭이듯이 말하는 학생은 없다.“미디어 산업의 수익구조가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요?”두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여전히 학생들은 손을 들고 차례를 기다린다. 질문에 따라 대답은 짧기도 길기도 하다.

이들의 토론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드는 일이 없다. 강의를 듣다가 질문이 생기면 학생들은 손을 든다. 교수는 자기 이야기를 마무리한 다음, 학생에게 바통을 넘긴다. 다른 학생의 발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도 이들은 손을 든다. 그러면 이야기하고 있는 학생의 말이 끝나고 이에 대해 교수가 몇마디를 덧붙인 다음, 발언권이 넘어간다.

이런 방식은 대형강의에서 토론이 교수의 통제하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한다는 장점이 있다.

누구도 상대방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곳 토론의 특징이다. 학생들은 보통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다른 학생의 발표에 대해 말할 때에는 좋은 지적이라며 동의하거나, 이런 부분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부연한다. 설혹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교수도 마찬가지다.“음… 흥미롭군요 (interesting!).”이 정도가 정답은 아니라는 표현이다.

설왕설래가 없는 만큼 토론이 파편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국 교실에서의 토론은 오히려 설왕설래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준다. 학생 발언 뒤에는 반드시 교수의 정리 코멘트가 뒤따르는데 이 코멘트는 토론이 과열되는 양상을 애초에 차단한다. 학생들의 엉뚱한 이야기에도 교수는 흥미롭다며 맞장구쳐 준다. 미국 교실에서‘참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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