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청춘(靑春).

우리의 코끝은 지금 봄바람으로 간질간질하다. 어디 바람뿐이랴. 찬바람을 온전히 다 맞아온 봉오리들도 이제 조금씩 고개를 들며 자신만의 향기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ECC 동산 위를 거니는 신입생들을 보면 꼭, 그 봉오리 같다. 이렇듯 우리네의 봄은 코끝으로, 눈으로도 느낄 수 있다. 파란 봄에 살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서점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바로 그 근원지이다. 내가 택한 길이 최선인지, 다른 사람들 보다 속도가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파랗기 보다는 조금 칙칙한, 푸르딩딩한 여러 생각들이 갈지자를 그리며 머릿속을 맴돌던 터라 제목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또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아픈 청춘들의 공감을 얻고 있음을 방증하는데 그만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도 위안을 받았다.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 하고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파란 봄날, 어떻게 하면 그 시간 속에서 막연함과 불안함을 안은 채 그냥저냥 살아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종국에 나만의 청사진을 잘 그려 왔다며 웃음 지을 수 있을까? 나 또한‘아픔 진행형’을 겪고 있지만 이 시기를 함께 하는 이들에게 두 가지를‘그리자’ 고 말하고 싶다.

먼저 습작을 그리자.

즉,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걸작을 그려 나가자. 단,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안정된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내 꿈’과 맞닿아 있는 것을 그려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부모님의 우려 속에 이화의 교정을 밟았다. 사범대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지 않고‘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이’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했다. 안정성과 관련해 습작을 그려나갔던 때, 시간은 가고 있었지만 그 시간을 살아가는 주인공인 나는 없는 느낌이었다.

이후 용기를 내어 관심분야로 뛰어드니 생각했던 것 이상의 장점과 단점을 찾을 수 있었다. 정부부처 블로그 기자단, 한 대학신문의 대학생 기자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의 단점을 보고나니 자연스럽게‘어떻게 그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을까?’하는 발전적인 생각으로 옮겨졌다.

공지영의 소설「즐거운 나의 집」에서‘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저절로 입이 오므라들었던 적이 있다.

용기라는 연필을 손에 쥐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나’라는 도화지에 소중한 나의 꿈을 위해 습작들을 그리자. 이내 걸작으로 거듭 날 테니.

그리고‘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어‘님’을 그리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이 나왔을 때 주변사람들과‘그럼 자신은 무기징역 감’내지, 조금 더 격하게는‘사형 감’이라고 말하며 웃었던 적이 있다.

부끄럽게 고백하건데 나 또한 뜨거운 물이 목구멍에 차오르는 느낌이 들라치면‘내 상황’이라는 두꺼운 보호막으로 밀어 내리기를 반복했다.‘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는 작가의 말에 시간이 갈수록 공감이 간다.

여기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주체성을 상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점’을 빼는 과정, 내가 만든 보호막을 거두어 내는 과정이리라. 마음을 나누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픈 청춘이라 해도 이 시기를‘아름답게’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 흔적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의 봄날을 채워주는 파란 물감이다. 우리의 나날들을 다시금 톱아보게 하고 이로써 진정으로 채워지게 한다.

흔적이라는 물감이 손에 묻고, 옷에 묻을 지라도 그리고, 또 그리자. 우리의 봄날이 파랗게 채워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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